그 할아버지는 인자한 성품에 해박한 지식과 경륜을 두루 갖추시고, 더욱이 왠지 모르게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서려있었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으면서 동네의 크고 작은 일에 길잡이가 되어주고 사람들끼리 사소한 다툼이라도 있으면 명쾌하게 가르마를 타 주어서 동네의 질서와 평온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셨다.
또한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싸움을 할 때 “이놈들!”하고 헛기침 한번 하시면 모두들 꼬리를 내리곤 하였다.
그래도 단지 무서운 호랑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백두산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아마 백두산이 지니고 있는 영산으로서의 경외심에 더하여 기품서린 은발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며칠 전에는 네 엄마가 머리 염색을 하기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어느새 할머니 다 되었네” 하고는, 순간 아차 싶어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을 했다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나도 염색 좀 해야겠다”고 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해 보려고 했었다.
나도 어느새 귀 밑머리가 제법 흰색으로 물들고 있어서, 새치라고 하면서 애써 외면을 했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하며 염색약을 바르는데 문득 어린 시절의 백두산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한 살 한 살 세월의 나이테를 더 하면서 나도 머리가 희어지면 “백두산 할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단순히 나이만 먹는다고 그 할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을 따끔하게 꾸짖어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큰 어른은 어디에 계신가? 서로 이기려고, 더 차지하려고 하고, 양보와 타협에 익숙하지 못한 이 세상에, 그 한 말씀으로 모두들 승복하게 하던 위엄을 지닌 백두산 할아버지가 그립다.
또 너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인품과 덕망의 모자람 속에 허망하게 나이만 더해가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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