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걷기에 빠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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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걷기에 빠져봅시다

<시 론>

  • 승인 2006-09-12 00:00
  • 노병일 대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노병일 대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혈압은 높고 기름기는 많고 혈당은 경계수위니 조심하라! 얼마 전에 내 앞에 내밀어진 건강진단 결과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수치를 보니 눈앞이 아찔하면서 곧바로 당연한 인과응보라고 체념하게 된다. 그간의 잦은 술자리와 무절제한 생활이 낳은 쓰디쓴 열매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놀란 아내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이르니, 당장 혈압약을 먹으라 하고 한달후에는 다른 약도 처방한단다. 거기다가 그간의 고혈압이 망막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니 안과에도 가보란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안과에 가서 눈을 맡겼고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초조했다. 다행히 망막은 이상이 없다고 한다. 신체의 마디마디가 노화의 길로 빠르게 달려가는 나이에 이르니, 건강을 가로막고 뚝 서있는 붉은 신호가 더욱 겁이 난다.

그러던 중에, 자연의학을 오래 공부한 서클 선배를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참으로 기이한 만남이었다. 그 선배는 약과 음식도 중요하지만, 화를 없애고 몸에 있는 지방을 태워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이에 따라 적극적으로 눈을 돌린 것이 걷기였다. 이제는 오래 걷기를 생존을 위해 평생 함께 할 동반자로 삼기로 굳게 다짐하였다. 등산하는 것에 비해서 걷는 것은 별도의 차량이나 장비가 필요하지 않으니, 차운전을 거의 하지 않는 내게 걷기는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걷는 시간은 30분 이내였는데, 이번에 건강진단으로 옐로 가드를 받으면서 걷는 시간을 1시간으로 늘려 잡았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빠르게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걷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 자신의 짤막한 경험에 따르면, 혼자 걸을 경우에는 걸으며 여러 일을 할 수도 있으니 걷기는 경제적이다. 예를 들어 걸으면서 마음 비우기 훈련을 하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즐겁게 살기 위한 다짐도 하고, 시구(詩句)나 좋은 노래 가사를 중얼거려 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소박한 기도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도 빌어보고, 가르칠 수업 내용을 연습하기도 한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면 하지 못할 많은 일들을 걸으면서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을시고!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자연이 뿜어내는 여러 가지 색에 흠뻑 젖기 위해서 어두울 때보다는 밝을 때 걷는 것이 좋아 보인다. 이렇게 하면 요즘 부각되고 있는 색 치료의 효과도 아주 톡톡히 볼 수 있다.

마침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은 여러 가지 색을 음미할 수 있는 계절이고 거기다 날씨도 청명하니 그야말로 걷기에 따봉인 달이다. 그래서인지 보건복지부 장관이 텔레비전에 나서서 9월 중순에 실시하는 전국민 걷기대회를 참석하라고 홍보하는 모습이 남달라 보인다.

그리고 금년 10월은 ‘학교까지 걷기 세계의 달(International Walk To School Month)’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세계의 아동, 부모, 교사,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걷기의 장점을 축하하는 이 국제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요즘은 이렇게 걸을 수 있는 두 다리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해 한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이제 몸의 살덩이도 몇 킬로그램 없어진 것 같다. 그리고 몸이 약간 가벼워지니 마음도 비워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덜 먹으려하니 탐욕과 욕심이 줄어드는 것 같다. 따라서 걷는 것은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모두에 좋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걷고 또 걷다보면, 언젠가는 하늘까지 걸어서 훨훨 날아갈 정도로 가벼워지면서 도(道)가 탁 트이지 않을까 하는 몽상가의 오만에 푹 빠져보기도 한다. 이 좋은 가을에 무조건 걷고 또 걸어서, 모든 사람이 건강의 무릉도원에서 만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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