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가 생각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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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가 생각나는 계절

<사이언스칼럼>

  • 승인 2006-09-11 17:12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 전시연구팀장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 전시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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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 전시연구팀장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 전시연구팀장
기는 속일 수가 없다.” 무더위에 지쳤다가 생기를 찾은 요즈음의 인사말이다.
이렇게 상큼한 초가을에 접어들면 입맛도 살아나고 밤이 깊어지면 구수한 무엇인가를 찾게 된다. 그 가운데 손꼽으라면 당연 누룽지일 것이다. 누룽지와 숭늉의 구수한 내음과 맛은 그 어느 것에 비길 수가 없다.

그러나 가마솥이 점점 사라지고 전기밥솥이 주방을 차지하면서 이제는 향수로만 남아 있다. 이러한 누룽지의 뒤에는 수천년 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여 만들어낸 겨레과학의 결정체인 하나의 주방용품이 있다. 그것이 바로 가마솥이다.

가마솥하면 흙맥질되고 그을음이 끼어 있는 부뚜막에 걸려있는 가마솥을 떠올리며 비위생적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엌과 가마솥은 김치와 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겨레가 삶을 영위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다.

가마솥에 밥을 어떻게 짓는지 도시에서 자란 요즈음 젊은이들은 잘 알지 못한다. 가마솥에 밥을 지으려면 가마솥에 쌀을 넣고 물을 잘 맞추어 솥뚜껑을 닫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가마솥 안의 수증기 압력이 높아져서 어느 순간 수증기가 ‘푸우’ 소리와 함께 무거운 솥뚜껑을 요동치게 하면서 밀고 나온다.

이것은 밥이 다 된 신호가 된다. 요즈음 통가열식 압력밥솥이 밥이 다 되면 수증기가 터져 나오면서 취사버튼이 보온버튼으로 옮겨가는 바로 그 이치이다. 이렇게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 뒤 잔불로 뜸을 들이면 구수한 밥내음과 함께 밥이 다 된다. 고슬고슬한 밥을 퍼내고 가마솥 바닥에 눌어 붙은 것을 긁어 낸 것이 바로 누룽지이다.

이렇게 말하면 밥짓기가 간단한 것 같지만 다른 용기에 밥을 지으면 밥이 설거나 타서 밥을 제대로 지을 수가 없다. 그 까닭은 바로 가마솥의 구조에 있다. 가마솥은 뚜껑의 무게가 전체 무게의 33%정도나 된다. 그래서 솥 안에 높은 압력이 유지된다. 솥의 밑 바닥이 아궁이에 걸리는 솥전이 있는 부분보다 두배 이상 두껍다.

즉 솥 밑바닥의 두배 이상의 두께가 솥전쪽으로 점점 얇아져서 한 곳에 집중되는 열이 빠르게 얇은 쪽으로 고루 퍼진다. 그래서 솥안에 고른 열이 유지된다. 이러한 가마솥 안의 높은 압력과 고른 열이 고슬고슬하고 진득진득한 맛있는 밥을 짓게 하고 구수한 누룽지와 숭늉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이 된다.

여기에는 장인들의 경험과 솜씨, 과학슬기가 녹아 들어 있다. 가마솥의 두께와 무게를 가늠하기 위하여 독특한 도구를 개발하여 쓰고 있다. 바로 무쇠를 녹여 가마솥을 부어내는 거푸집을 만드는데 쓰는 말과 도래라는 도구이다.

말은 도래를 고정시키고 돌리면서 거푸집을 만드는 도구이다. 도래는 솥의 크기에 따라 크기가 다른 여러 종류가 있다. 장인들이 스스로 고안하여 발명한 이러한 도구가 없이는 가마솥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 모두는 우리 겨레가 벼농사를 지어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 오랜 경험을 토대로한 연구개발로 가장 좋은 가마솥을 개발해 낸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첨단과학기술과 접목되어 통가열식 압력밥솥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쓰는 물건과 물질처럼 가장 안전하고 과학기술이 듬뿍 담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룽지가 생각나는 이 계절에 가마솥에 쌀과 콩을 넣고 지은 맛있는 밥과 누룽지 그리고 숭늉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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