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말이야
대한민국 싸나이치고, 술 한 잔 들이켜고 “캬, 왕년에 내가 말야…”로 시작하는 무용담 하나쯤 없는 사람 없다. 4대 1, 5대 1 싸움은 그야말로 왕년의 치기다. 영화 ‘비트’이후, 객기 부리는 객적은 소리도 17대 1, ‘대첩’은 돼야 한다.
‘뚝방전설’은 ‘18대 1’ 전설적 쌈짱의 이야기다. 폼 나게 추켜세우는 건 아니다. 지지리 궁상인 변두리 청춘을 아무 생각 없이 코미디에 얹어서 보여준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행복할까. 전설은 그들 청춘에 어떤 흔적으로 남았을까.
천하무적 쌈짱 박정권(박건형), 주먹은 앞서도 사실은 할 일이 없어 싸우는 기성현(이천희), 입이 뇌의 명령을 듣지 않는 ‘구강 액션’의 달인 유경로(MC몽), 이들 세 친구는 동네 뚝방을 장악하고 있던 뚝방파를 굴복시키고 ‘노타치파’를 결성한다.
졸업 후, 정권은 건달이 되려고 동네를 떠나고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5년 뒤, 찜질방 노래교실 강사가 된 경로와 병원 방사선 기사로 일하는 성현 앞에 정권이 나타난다. 노타치파의 부활? 그러나 정권과 같은 조직에 있었던 이치수(유지태)가 뚝방파와 손잡고 동네 재개발에 나서면서 뚝방 사수를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전설 아닌 청춘이 어디 있겠는가.…우리의 전설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추억 하나 없이 서른 언저리로 가야 한다. 그럼 우린 너무 불쌍하다.…” 성현의 독백은 그들이 하필 왜 뚝방에 그토록 매달리는지 설명한다.
조범구 감독은 2년 전 독립영화 ‘양아치 어조’로 별볼일 없는 청춘들을 한 차례 탐구했었다. ‘뚝방전설’은 '’양아치 어조’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방황하는 청춘, 3명의 주인공, 이들의 아픈 성장기를 거칠게 담아낸 화면,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끌어 가는 점은 그대로다. 하지만 '뚝방전설'은 '양아치 어조' 보다 훨씬 재기발랄하고 개성이 흘러 넘친다.
자신은 “19대 1도 문제없다”는 구강 액션의 달인 경로나 “전국구 조폭되는 것이 서울대 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경험상의 진리(?)를 설파하는 낭만 조폭 두목 상춘(오달수) 등의 캐릭터는 신선하고 유쾌하다.
모래바람 분위기를 살리려고 보릿가루를 볶아 날렸다는 고등학생들의 패싸움 장면과 영화 후반부, 빗속에서 벌이는 이른바 ‘뚝방대첩’의 스타일리시한 액션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코믹과 액션 누아르가 겉돌아 산만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호흡은 아쉽다. 철없이 폼만 잡는다는 소리를 피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전설로 남고 싶은 사내들의 마음이 그토록 무겁다는 걸까.
굵은 빗줄기 때문에 잘 보이진 않지만 ‘뚝방대첩’의 무대는 바로 대전천이다. 18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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