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를 만난후 제2의 인생을 써나가요

詩를 만난후 제2의 인생을 써나가요

한남대 평생교육원 시에 빠진 중년들

  • 승인 2006-09-08 00:00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 김찬기 목사
▲ 김찬기 목사
한남대 평생교육원, 이곳에는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차있다. 책을 든 학생 대부분이 모두 머리가 희끗한 중년들이라는 것이다. 손에 든 책도 다양하다. 논술에서부터 부동산, 미술, 영어, 한문, 레크리에이션, 그림, 서예, 성악, 무용, 사진 등에 이르기까지 중년들로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과목들도 많아 보인다.

하지만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젊음 가득한 대학생들보다 말똥한 눈과 생기가 넘치는 표정이다. 평생교육이란 말을 실감할정도로 이곳은 중년들이 제2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한 강의실, 이곳은 시(詩)에 대한 강의가 한창이다. 시문학에 대한 기초지식을 배우고 창작능력을 위해 마련된 강의다. 강의진도 쟁쟁하다. 김완하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비롯해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문학계에서 익숙한 주용일 시인, 길상호 시인이 중년들에게 잊혀졌던 감수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학생들의 평균연령도 50대에 가깝다. 최고령이 65세일 정도다. 출신도 다양하다. 정년퇴직한 교육자에서부터 군출신, 목사, 주부 등 저마다 시를 통해 못다 이룬 꿈을 꾸고 있다. 3명의 학생을 만났다. 김찬기(48) 대전방주교회 목사와 박병모(55), 이광순(45)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김 목사는 한남대 일문과 출신으로 서울장로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목사와 건양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병모씨는 예비역 소령출신으로 논산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중이고 이광순씨는 10살 쌍둥이를 둔 주부다. 공통점이란 전혀 없는 이들은 평생교육원에서 시문학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다. 바로 시(詩)가 이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이들이 문학을 통해 무엇을 얻고 있을까.



“시를 통해만난 진리 신도에게 전달해요”




▲김찬기 목사= 김 목사는 요즘 한창 물(?)이 올랐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자신이 목사로 있는 교회는 물론 수많은 교회에서 초청해 설교를 부탁하고 있다. 설교방식을 다양화하면서 그의 설교가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의 비결은 바로 시(詩)다. 설교에 시를 가미하는 색다른 방식이 신도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시문학 공부에 더 열정적인 것도 이 이유에서다. 하지만 더 중요한게 있단다. 문학을 통해 그동안 간과하던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설명과 분석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 ‘묘사’라는 것이 다가왔다.

시를 배우기 전 그는 3년동안 사진을 공부했다. 물론 평생교육원에서다. 사진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시를 통해 보는 세상과 만나면서 그에게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감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

시공부 2년째인 김 목사는 “문학은 내게 또 다른 삶의 에너지”라며 “공부를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고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진리를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보다 힘들지만 삶의 깊이를 넓혀줘”




▲박병모 예비역 소령= 박씨는 군인이었다. 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직업이다. 물론 오래전의 일이지만 젊은 날의 대부분을 군대에서 보낸 만큼 그에게는 군인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강인함만 있지 않았다. 훈련중에도 갑자기 떠오르는 시감(詩感)을 메모할 정도로 그에게는 문학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신문과 국방관련 각종 홍보지에도 그는 시를 비롯해 다양한 칼럼을 통해 글에 대한 애착을 보여왔다.

본격적인 시공부를 한 지 3년째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물과 현상을 시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써왔던 시의 주제는 계절과 가족, 그리고 지난 시절의 향수가 대부분이다.

인내가 필요하단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기 위한 오랜 산고를 겪어야 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단순히 보이는 것만이 아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표현해낼 수 있어야 시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복지시설에서도 꿋꿋하게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시를 만났기 때문이다. 박씨는 “글이란 매개체로 대중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행복”이라고 말했다.



“인내를 먹는 시표현 군출신이 되레 제격”




▲이광순 주부= 3명중 이씨가 최고 선배다. 그는 4년전에 시공부를 시작했다. 이씨는 원래 서산에서 살았다. 그림을 좋아했었다. 학창시절에 여러 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그는 미술에 능력을 보였다. 그러다가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당초 서산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지만 시를 만나면서 그는 줄곧 대전을 떠나지 않았다. 늦둥이인 10살 쌍둥이를 키워야 하기에 어려움도 많지만 시는 내려놓지 않고 있다.

4년전 우연히 평생교육원에서 만난 시문학의 매력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주제는 일상생활과 가족, 그리고 사랑과 그리움 등이다. 시 한 줄 한 줄 쓰기가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글을 이미지화 하는게 가장 어렵단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시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 깊고 넓은 생각이 필요한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시를 좋아한다. 공부수준을 넘어 시가 단조로웠던 그의 삶에 한 줌의 빛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빛이 일상생활에 젖었던 그에게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해준 것이다.

이씨는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시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고 있다”며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시인으로서 당당히 세상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 박병모 예비역 소령
▲ 박병모 예비역 소령
▲ 이광순 주부
▲ 이광순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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