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제 공기업 사장 강제로 쫓아내면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임기제 공기업 사장 강제로 쫓아내면

<중도시평>

  • 승인 2006-09-06 00:00
  • 김학용 편집부국장김학용 편집부국장
▲ 김학용 편집부국장
▲ 김학용 편집부국장
지방공기업 사장 한 명이 있다. 그는 전임 시장이 임명했다. 전임 시장이 선거에 당선될 때 기여한 사람이다. 전임 시장이 재선에 도전한 지난 선거 때도 그 시장을 다시 도와 선거운동을 했다.

그런데 그 시장이 낙선하고 말았다. 그 사장도 물러나는 게 정치적 도리다. 공기업 사장 자리가 임기를 보장받는 자리지만 전임 시장한테 정치적인 공(功)으로 받은 것이고, 또 바로 직전 선거 때도 새 시장의 적군(敵軍)이 되어 싸웠다면 임기제(任期制)를 방패삼아 자리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은 낯두꺼운 일이다. 그래도 그는 일단은 눌러 앉았다.

새 시장은 그를 쫓아내기로 맘먹었다. 그렇다고 공언한 것은 아니므로 그 이유가 뭔지는 밝히지는 않았다. 경쟁자를 편든 때문이거나, 사장으로서 능력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일 게다. 아니면 그 자리에 쓸 다른 사람이 있거나 그 자리를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 아니겠는가?

이유가 어떠하든 못 나간다고 버티는, 임기제 사장을 내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백방으로 법을 뒤지고 연구해도 법으로 몰아낼 방도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아래 사람을 보내 노골적으로 ‘사표’를 요구했지만 거부됐다. 그러자 시 산하의 모든 공기업 사장들에게 재신임을 위한 일괄사표를 내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거기에 맞춘 것인지 다른 공기업 사장 한 명이 정말 사표를 냈다. 문제의 공기업 사장은 여전히 버티고 있으나 대전시 공기업 사장의 경우 정권(시장)이 바뀌면 임기중이라도 재신임의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다.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진다면 지방공기업 사장의 임기를 정한 법은 사문화될 것이다. 지방공기업 사장 자리는 정무직(政務職)과 유사한 면이 있으니 차라리 자치단체장과 진퇴를 같이 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들도 있다.

임기제를 없애고 자치단체장과 운명을 함께 하게 만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치단체와 공기업 간의 업무 협조가 더 잘 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자치단체와 지방공사간 업무 협조가 잘 안 돼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양자간 ‘공동 운명제’의 실익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문제점은 있다. 가령, 단체장이 공기업 사장에 대한 임면(任免)을 마음대로 하게 하거나 진퇴를 함께 하도록 한다면 공기업을 이용한 자치단체장의 비리는 더 활개를 칠 수도 있다. 또 공기업 사장은 선거 때면 노골적으로 현직 시장을 편들어야 하고, 그럴 경우 공기업 직원도 현직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편들지 않으면 나중 찬밥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엽관제(獵官制)의 폐해다. 공기업 사장의 임기를 만들어 놓은 이유가 있다.

공기업 사장을 강제로 축출하는 것은, 그러나 그런 명분이나 논리상의 시비에 앞서 우선 실정법상의 문제다. 임기제 사장에게 거듭하여 사표를 요구하고,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강제 축출하려 한다면 이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폭력이다. 물론 어떤 폭력도 불법이다. 설사 당사자의 정치적 책임 때문이 아니라 능력이나 도덕성 등 공기업 사장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 해도 임기중에 있는 공기업 사장을 직무상 책임이 아니라 힘으로만 쫓아내려는 행위는 그 자체가 폭력적이다.

임기제는 인사권과 피임용자와 서로 뜻이 맞는 것을 상정하여 마련한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공기업 사장의 임기제는 지방공기업이 자치단체에 지나치게 예속되는 것을 막고 책임경영을 유도하는 장치일 것이다. 시장과의 불화가 임기를 강제로 단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다.

시장이 지난 선거 때 상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다 용서하되, 오로지 한 명만 예외라 해도 그 한 명을 억지로 쫓아낼 수는 없다. 권력자(인사권자)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룰(rule)은 있다. 대전시의 좀더 품격있는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헤드라인 뉴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교원들의 골머리를 썩이던 생존 수영 관련 업무가 내년부터 대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로 완전 이관된다. 추가로 교과서 배부, 교내 특별실 재배치 등의 업무도 이관돼 교원들이 학기초에 겪는 업무 부담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동·서부교육청 학교지원센터(이하 센터)가 기존 지원항목 중 5개 항목의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학교에서 맡던 업무 4개를 추가로 지원한다. 먼저 센터 지원항목 중 교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생존 수영 관련 업무는 내년부터 교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현재 센터에..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