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용 편집부국장 |
그런데 그 시장이 낙선하고 말았다. 그 사장도 물러나는 게 정치적 도리다. 공기업 사장 자리가 임기를 보장받는 자리지만 전임 시장한테 정치적인 공(功)으로 받은 것이고, 또 바로 직전 선거 때도 새 시장의 적군(敵軍)이 되어 싸웠다면 임기제(任期制)를 방패삼아 자리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은 낯두꺼운 일이다. 그래도 그는 일단은 눌러 앉았다.
새 시장은 그를 쫓아내기로 맘먹었다. 그렇다고 공언한 것은 아니므로 그 이유가 뭔지는 밝히지는 않았다. 경쟁자를 편든 때문이거나, 사장으로서 능력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일 게다. 아니면 그 자리에 쓸 다른 사람이 있거나 그 자리를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 아니겠는가?
이유가 어떠하든 못 나간다고 버티는, 임기제 사장을 내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백방으로 법을 뒤지고 연구해도 법으로 몰아낼 방도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아래 사람을 보내 노골적으로 ‘사표’를 요구했지만 거부됐다. 그러자 시 산하의 모든 공기업 사장들에게 재신임을 위한 일괄사표를 내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거기에 맞춘 것인지 다른 공기업 사장 한 명이 정말 사표를 냈다. 문제의 공기업 사장은 여전히 버티고 있으나 대전시 공기업 사장의 경우 정권(시장)이 바뀌면 임기중이라도 재신임의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다.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진다면 지방공기업 사장의 임기를 정한 법은 사문화될 것이다. 지방공기업 사장 자리는 정무직(政務職)과 유사한 면이 있으니 차라리 자치단체장과 진퇴를 같이 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들도 있다.
임기제를 없애고 자치단체장과 운명을 함께 하게 만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치단체와 공기업 간의 업무 협조가 더 잘 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자치단체와 지방공사간 업무 협조가 잘 안 돼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양자간 ‘공동 운명제’의 실익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문제점은 있다. 가령, 단체장이 공기업 사장에 대한 임면(任免)을 마음대로 하게 하거나 진퇴를 함께 하도록 한다면 공기업을 이용한 자치단체장의 비리는 더 활개를 칠 수도 있다. 또 공기업 사장은 선거 때면 노골적으로 현직 시장을 편들어야 하고, 그럴 경우 공기업 직원도 현직 시장을 더 적극적으로 편들지 않으면 나중 찬밥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엽관제(獵官制)의 폐해다. 공기업 사장의 임기를 만들어 놓은 이유가 있다.
공기업 사장을 강제로 축출하는 것은, 그러나 그런 명분이나 논리상의 시비에 앞서 우선 실정법상의 문제다. 임기제 사장에게 거듭하여 사표를 요구하고,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강제 축출하려 한다면 이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폭력이다. 물론 어떤 폭력도 불법이다. 설사 당사자의 정치적 책임 때문이 아니라 능력이나 도덕성 등 공기업 사장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 해도 임기중에 있는 공기업 사장을 직무상 책임이 아니라 힘으로만 쫓아내려는 행위는 그 자체가 폭력적이다.
임기제는 인사권과 피임용자와 서로 뜻이 맞는 것을 상정하여 마련한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공기업 사장의 임기제는 지방공기업이 자치단체에 지나치게 예속되는 것을 막고 책임경영을 유도하는 장치일 것이다. 시장과의 불화가 임기를 강제로 단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다.
시장이 지난 선거 때 상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다 용서하되, 오로지 한 명만 예외라 해도 그 한 명을 억지로 쫓아낼 수는 없다. 권력자(인사권자)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룰(rule)은 있다. 대전시의 좀더 품격있는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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