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이 아니라 창바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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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아니라 창바이산?

<시사에세이>

  • 승인 2006-09-05 00:00
  • 김창영 前한국신당 대변인김창영 前한국신당 대변인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는 중국에 갈 때마다 나는 두려움 하나를 감출 수 없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처럼 발전에 가속도가 붙는다면, 아직은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또 조금씩은 낮추어보기도 하는 그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당나라나 청나라의 위세로 우리를 압도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장춘공항을 나오며, 아무리 둘러봐도 서대전역보다 나을 것이 없던 10여 년 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야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의 탓이라고 치자. 그러나 새삼스럽게 도로를 넓히고 정상에서 불과 10km 떨어진 곳에 공항을 닦는 모습은 거대한 용이 내일을 향해 발톱을 세우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친절한 조선족 가이드는 “중국이 2008년 유네스코에 백두산을 자연유산으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무송빈관에서의 저녁식사는 그 자체로도 맛있었다. 오래 전 옌볜에서의 거친 먹거리를 떠올리며, 중국 항공사에서 기내식과 함께 나누어준 조잡한 상표의 중국산 고추장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걸 보면 숙소나 식사나, 중국은 변두리까지도 이미 우리의 현재와 크게 거리가 없었다.

어떤 이는 차창밖에 펼쳐진 초원을 보며 “천연 골프장”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자작나무가 점점 키가 작아지더니 아예 정원수 크기로 축소된 모양새가 광야에 선 수도승의 뒷모습 같아 숙연했다.

1,300여 계단을 올라 천지 가는 길은 적당히 힘이 들고, 적당히 긴장이 되는 경건한 여로였다. 그것은 그러나 그 이튿날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끊어질듯 이어지던 종주코스의 시작일 뿐이었다.

천지(天池)가 보이는 5호경계비 주변은 바람이 무척 심해 모자가 날아가고 점퍼가 벗겨질 지경이었다. 경계비는 시멘트로 대강 만들어 - 한때는 한솥밥을 먹던 -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계를 표시한 볼품없는 푯말이다.

사람들은 아래서는 맑던 날씨가 한순간에 흐려졌다며 투덜거렸지만, 나는 얼마나 그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천지는 구름에 가려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맨얼굴을 다 보여준다면 그것은 영산(靈山)에 걸맞는 하늘못 ― 천지의 자태가 아니다.

화강암 계단을 벗어나 개울물에 손을 담그니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금세 손끝이 아릴만큼 시려왔다.
버스를 타고 ‘금강대협곡’으로 이동했다. 하늘을 향해 깎아 세운 것처럼 기묘한 바위며 오밀조밀한 암석의 조화, 금방이라도 다시 흘러내릴 듯 협곡 쪽으로 길게 뻗은 산사태 흔적이 ‘금강’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협곡의 이름이 그게 아니었다. ‘長白大峽谷’ ― 검은 색 다섯 글자가 너무나 선명했다. 서울에서 간 안내원은 “지난 번 왔을 때만 해도 금강대협곡이었는데, 중국놈들이 백두산을 통째로 빼앗아 가려고 금강이라는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단언했으나, 확인불가.

정확한 것은 중국이 2005년 말 백두산의 소속을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길림성 ‘창바이산관리위원회’로 넘겼다는 사실이다. 조총련이 경영하는 호텔에 여장을 푸니 마당 안내판에 ‘창바이산을 보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어록이 새겨져 있었다.

그랬다. 결국 우리가 순례한 것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아니라 중국의 영토 ‘창바이산’(長白山)이었다. 그들이 그 근처에서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있다는 최근의 보도도 심상치 않다. 사내가 모자라면 제 계집을 못 지키고, 국력이 미약하면 제 국토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내일이나 변함없는 세상의 진리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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