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선아 시인 |
“길에서 우연히 한하운의 시집을 주웠다. 나는 울었다. 나는 한하운이 되고 싶었다. 먼저 문둥병에 걸려야 했고, 그리고 문둥이의 시를 써야 했다. ‘가도 가도 황톳길……’은 내 운명의 구호가 되고 말았다.”
평생 자신의 운명과 이런 구호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멋지면서도 가슴 아픈 일이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결실을 얻으려면 어느 한쪽은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팔방미인이어서 두루두루 잘 하여 나름대로 성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흔치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한다. 시대의 풍운아, 고은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잃어야했다. 그 대가로 늙음과 명성을 얻었다.
나에게는 ‘골방의 추억’이 있다. 깡촌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와야 했기에 서점에서 여유롭게 책을 구입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집 저집에서 굴러다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온 동화책들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나의 독서인생의 시작이었다. 읽을 책이 부족하다보니까 같은 책을 두세 번 읽어야 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는 세 평 남짓의 도서관이 있었다. 햇빛도 들지 않고 쾨쾨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기에 학생들은 그 도서관을 ‘썩은 골방’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나는 책에 핀 곰팡이 냄새를 그때부터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방과 후 쥐구멍에 새앙 쥐 드나들 듯 썩은 골방을 찾았다. 그 때 읽었던 ‘제인에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생의 한 가운데’, ‘테스’ 등은 얼마나 아름답고 감미로웠던가.
농촌생활에서 오는 초라함과 구질구질함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책 안의 다른 세계를 엿보는 것이었다. 말들이 뛰어노는 넓은 초원에 긴 드레스를 휘날리며 애인에게로 달려가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시녀라도 되어 그 속에 합류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러한 환상은 삼십 대를 넘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내 자신이 봐도 답답할 노릇이다. 현실세계가 힘들 때마다 도피하듯 책 속으로 숨어들어간다. 그것은 도피는 될지언정 문제의 해결은 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그런 썩은 골방의 추억을 잊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지금의 독서와 글쓰기는 그 자체만으로 유년을 답습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년에서부터 성장해온 내 안의 다른 세계는 이미 현실의 나와는 별개의 모습으로 자라버렸다. 한 몸에 두 세계가 들어 있는 상황에서 나는 그 두 집을 왕래하며 살고 있다. 그런 상황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듯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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