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편집부장 |
아버지 이연, 형 이건성과 함께 수나라를 폐하고 당나라를 세운 당태종 이세민과 그 신하들의 치세 기간은 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황금시대를 이뤄 ‘정관의 치’로 불린다.
당태종 이세민은 황태자인 형 이건성을 제거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 황제에 오른 인물이다. 정관의 치를 이룬 당태종의 많은 현신(賢臣) 중 위징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위징은 원래 당태종의 형이자 정적이었던 이건성의 전략가였다.
형제간의 권력다툼 중 위징은 황태자인 건성에게 동생을 죽여야 황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간언했으나 이를 듣지 않아 결국 권력은 이세민에게 돌아간다. 권력싸움에서 승리한 당태종은 자신을 죽이려 한 위징을 참수한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을 높이 사 요직에 임명한다.
관중, 제갈공명에 이어 중국사를 대표하는 명재상이 탄생한 배경이다. 조회 때마다 강직한 위징의 직언에 시달리던 당태종이 마침내 크게 화를 내자, 황후가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君明臣直)”며 남편인 황제에게 절을 올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당태종 이세민의 20여년 태평성대의 치세를 기록한 사료가 ‘정관정요’다. 오긍이 정리한 정관정요는 당태종과 위징의 치국문답(治國問答)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수신(修身)에는 채근담을,인사(人事)에는 정관정요를 참조한다고 한다.최근 공식적인 행사를 자제하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제왕학에 몰두하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도 정관정요를 탐독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대권주자로 최근 희망연대를 출범시킨 고건 전 총리는 다산연구소 고문으로 활동하며 또 다른 의미의 제왕학문서인 다산 정약용의 저서에 심취해 있다고 한다.
교육부총리와 법무부장관 등 코드 인사 논란으로 휘청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만큼이나 7월 초 출범한 민선4기 자치단체장들의 인사문제가 관심거리다.
대전시 산하 공기업 사장의 진퇴를 둘러싼 논란 역시 2개월째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박성효 대전시장은 얼마 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본인들이 판단해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다. 박 시장은 일부 인사를 겨냥해 “5.31 지방선거 때 한 일을 생각해 보라”며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
전쟁터와 같은 선거판을 되돌아 보면 적진에 섰던 공기업 사장을 당장이라도 인사조치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을 것이다. 그러나 법적인 하자가 없는 한 임기제인 공기업 사장을 퇴진시킬 방법은 없다. 검찰총장 등 국가권력 기관의 수장을 임기제로 한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다. 권한과 역할은 다르지만 지방 공기업 임원을 임기제로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박 시장으로선 선거 때 도와준 측근들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 있다. “누가 시장에 당선시켜줬는데”라는 한나라당 안팎의 볼멘 목소리도 많이 들을 것이다. 박 시장은 당선되는 순간 강자의 위치에 섰다. 서운함이 있더라도 순리로 풀어가야 한다. 공기업 사장들은 대전시정을 위해 수년,수십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다.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대화를 통해 진퇴의 명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대통령과 시.도지사 등 선출직 수장(首長)의 인사권은 유권자가 부여한 것이다. 공기업 사장 인사가 대전시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최대 현안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인사권은 잘 행사하면 약이 되지만 잘못쓰면 독이 된다. 1400년전 당태종의 정관정요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읽혀지는 것은 리더의 역할과 처세법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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