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
자기 삶의 주체로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그에 따른 권리 못지 않게 무거운 책무가 따르기 때문에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을 해 보지 못한 노예들은 주체적 삶이 두려워 주인의 품안에서 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요즘 전시 작전통제권(이하 작통권) 환수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현대판 노예들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UN군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에게 이양하였던 작전지휘권은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로 작통권으로 바뀌었고,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이후에 작통권이 UN군 사령관으로부터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되었다.
1994년에 평시 작통권은 우리나라에 이양되었으며, 전시 작통권은 한미간의 협상을 통해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우리나라에 이양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작통권 이양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우리 힘으로 국가안보를 지켜낼 힘이 없던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고 우리 스스로 국가안보를 책임질 능력과 의사가 있으면 당연히 환수되어야 할 권리이자 의무이다. 세계의 어떤 나라가 자기의 국가안보를 다른 나라에 맡겨놓고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과 한나라당은 이러한 작통권 환수가 전통적인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져 결국에는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는 주장을 하면서 전시 작통권 논의 자체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심하다 못해 딱한 사람들이다. 정말 작통권 환수는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양국 정부 당국자들의 말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나서서 한미동맹과 전시 작통권은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국무장관, 국방장관, 주한미군 사령관 등이 전시 작통권 환수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한미동맹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면이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눈도 없고 귀도 없는지 전시 작통권 환수는 불가하다는 자기들 주장만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얼마 전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국의 전시 작통권 행사에 동의한다고 하였다. 상전으로 모시는 주인나라의 대통령 말씀에 대해 이들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전시 작통권 이양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라 새로운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매우 냉정하고 치밀하게 진행되는 통상적인 절차일 뿐이다. 우리가 달라고 해서 주는 것도 아니며,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이양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던 50여전과 지금은 너무도 다른 상황이다. 남북간의 체제경쟁에서 북한은 남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북한의 경제규모는 남한의 3% 정도에 불과하며, 최근 2000년 이후 남한의 국방예산은 북한의 3배 이상 수준을 계속하여 유지하고 있다. 이제 우리 힘으로 국가안보를 책임질 여건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자존심과 주권이 걸린 작통권 환수를 반대하며 논의 자체를 중지하라 하는 수구언론과 야당, 그리고 후안무치한 전임 국방장관들의 주장은 현대판 노예들의 합창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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