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홍상수, 농익은 유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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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홍상수, 농익은 유쾌함

해변의 여인 (김승우·고현정·김태우 출연)

  • 승인 2006-09-01 00:00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서해안서 펼치는 ‘찌질한’ 로맨스
풍부해진 유머… 희망 담긴 결말
고현정 영화데뷔작 가볍지만 강렬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서로 닮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점점 더 닮아간다. 여행과 술, 관계맺기와 남녀의 동상이몽은 그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다.

그런 동어반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일상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인물과 미세한 떨림을 포착해내는 섬세한 눈. 나를 닮은 인물 그리고 꽁꽁 숨겨놓은 속물근성을 끄집어내 ‘야지’를 해대니, 속내를 들킨 듯 부끄럽고, 얄밉고 한편 두렵다.

그래 놓고는 자기 연민의 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나도 그래, 똑 같아. 미안해’하는 식이니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홍상수가 다시 여행을 떠났다. 이번엔 벚꽃이 만발한 서해안 신두리 포구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여행길에 오른다. 여자에 따르면 ‘일단 자야 애인’이니, 애인이랄 것도 없다. 그래도 한 남자는 여자를 애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여자와 하룻밤을 자는 남자는 애인이 아닌 처음 만난 남자다. 수컷들은 뒷간을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것일까. 다음날 그 남자는 살을 맞댄 여자와 선을 긋는다.

일행이 서울로 돌아온 뒤 남자는 혼자서 다시 바닷가로 간다. 이번에는 그녀를 닮은 유부녀를 만난다. ‘안된다’고 하면서도 욕정에 이끌리는 남녀. 그 모습을 그녀가 지켜본다.

‘해변의 여인’은 전형적인 홍상수 표 영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등을 통해 선명해진 그의 색깔이 여전히 묻어난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 속에 그도 달라졌다. 더 이상 음지에 머물지 않는다. 홍상수의 틀 속에 있지만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과장된 몸짓 없이도 나른하지 않게 흘러간다.

해변이라는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펼치는 이야기지만 관객이 곳곳에서 낯익은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은 시시콜콜한 로맨스가 우리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골키퍼 있어도 골을 주고받고, 싫다고 하면 세게 한 번 꼬집고 뒤돌아설 줄 아는 쿨한 사이지만 지극히 사소한 문제에 목숨을 걸기도 하는 인물들. 우습게 집착하고 묘하게 냉정하다.

영화 첫 데뷔를 치르는 고현정을 비롯해 김승우 김태우 송선미 등 네 배우들이 개성 강한 연기로 광채를 냈다. 능청스러운 연기의 극치를 달린 김승우, 때론 푼수같고 때론 엉뚱한 고현정, 홍상수의 맛을 제대로 낼 줄 아는 김태우, 절제가 돋보인 송선미가 절묘하게 하모니를 이룬다. 15세 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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