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이해준 감독, 관습 뛰어넘은 연출력
여성의 섬세함 그려낸 류덕환 연기 돋보여
‘천하장사 마돈나’의 개봉은 2
스크린 속으로 트랜스젠더를 끌어들이지만 애처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취향적 차이일 뿐이라고 우기지도 않는다. 현실을 거스르지 않고도 현실을 버티는 법을 즐겁게 가르쳐줄 뿐이다. 그 과정이 씨름판의 ‘뒤집기 한판’처럼 통쾌하다.
어설픈 영어 발음으로 마돈나의 노래 ‘라이크 어 버진’을 흥얼거리며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바르는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시작된다. 주인공 오동구(류덕환)는 마돈나 같은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큼지막한 자신의 발이 하이힐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짝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구시나기 쓰요시) 앞에 당당하게 여자로 서고 싶다.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으던 동구는 씨름대회에서 우승하면 5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교 천하장사에 도전한다.
동구가 이겨야 할 대상은 씨름 선수뿐이 아니다. 세상 편견도 이겨내야 하고 마초적 가부장 아버지도 넘어야 한다. 씨름판도 세상도 다 뒤집어야 마돈나가 되는 꿈에 다가설 수 있다.
성적 소수자를 다룬 소재는 새롭지만 내용은 새롭지 않다. 동구가 편견을 딛고 소원을 성취해 가는 과정은 ‘빌리 엘리어트’를, 씨름부의 에피소드는 ‘으랏차차 스모부’를 연상시킨다.
영화를 빛낸 힘은 이해영 이해준 감독의 빼어난 각본과 연출력. 관습을 끌어들이되 이를 넘어서는 설정과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담담한 유머감각으로 풀어가는 화술이 흥미진진하고, 아홉 명에 이르는 인물 하나하나를 생생히 살려낸 캐릭터 조형술이 탁월하다. 소수 취향의 드라마에 머물 수 있을 이야기를 다수가 만끽할 만한 극적 전개로 펼쳐낸 솜씨는 더없이 훌륭하다.
그리고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있다. 이 영화의 출연진은 앙상블과 개인 기량 모두에서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남자의 몸으로 여성의 감성을 섬세하게 그려낸 류덕환의 연기는 발군이다. 허벅지를 붙이고 무릎 아래를 벌려 앉거나 새끼손가락을 살짝 들고 샅바를 잡는 장면, 맨살이 부끄러워 젖꼭지에 밴드를 붙이고 짓는 새초롬한 표정은 특별히 따로 기록해둘 만하다. 중국풍 원피스에 터질 듯한 몸을 우겨넣고 “나 장만옥 같아”하고 물을 때의 동구는 장만옥 못지않게 사랑스럽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씨름 감독 백윤식, 술에 찌든 낙오자의 모습인 동구 아버지 김윤식은 측은하면서도 짜증이 나도록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다. 덩치 1·2·3으로 출연한 문세윤, 김용훈, 윤원석과 일어선생님으로 출연한 구시나기 쓰요시(초난강)의 연기는 러닝타임 내내 웃음을 선사한다.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동구의 그 후 삶은 힘들어도 참 행복할 것 같다. 그는 자기 자신을 정말 사랑하니까.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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