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에 잡히면 완전범죄는 없다

‘첨단’에 잡히면 완전범죄는 없다

  • 승인 2006-09-01 00:00
  • 이시우 기자이시우 기자
지문·DNA감식 등 수사기법 진화
사이버범죄는 디지털 증거분석으로
땀 한방울이면 “범인 꼼짝마”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는 완벽한 범죄 예방 시스템을 꿈꾼다. 영화에서 꿈꾸는 범죄없는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범죄에 대해 철저하고 신속히 수사를 벌여 범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범죄자는 단서를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범죄 현장에 있는 수사관들은 수 천년동안 바다 깊은 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은 수사관들에게 점점 선명한 보물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 과학으로 무장한 수사관들이라면 찾지 못할 보물, 범죄 현장에서 찾지 못할 증거는 없다.
‘발바리’사건도 DNA분석 검거


범인을 검거할 때마다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증거라며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유전자 감식을 통한 DNA 분석이다.

유전자 감식이란 손가락 지문처럼 사람마다 서로 다른 DNA모양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혈액이나 머리카락 등 세포가 존재하는 신체조직과 분비물에서 채취된 DNA내 염기서열 및 물질성분 등의 차이를 분석하는 것이 유전자 감식의 기본원리다.

유전자감식이 처음 사용된 것은 영국에서다. 1983년 영국의 엔더비에서는 15세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됐다. 3년 뒤에도 같은 형태로 살해된 채 발견되자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경찰은 수사 끝에 17세 소년을 붙잡고 자백을 받아냈다. 마침 DNA분석 기법이 개발됐다는 소식을 접한 경찰은 소년의 DNA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잔존물들을 비교했다. 그러나 소년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일치하지 않아 석방됐다. DNA감식법에 의해 혐의를 벗은 최초의 인물이 됐다.

국내에서는 1991년 DNA감식기법이 처음으로 도입돼 그동안 수많은 강력사건에 결정적 증거로 활용돼 왔다. 특히 ‘발바리’라 불리며 지난 10년간 부녀자 등을 성폭행해 온 이 모(45)씨를 검거할 수 있었던 이유도 DNA 분석을 통해 용의자를 압축, 검거에 이를 수 있었다.

또 삼풍백화점 붕괴, 괌 항공기 추락사고, 화성씨랜드 화재 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등 대규모 인명피해 사건에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큰 공헌을 해왔다.



레이저장비로 보이지않는 혈흔도


범인들이 범죄 현장에서 신경쓰는 일은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 스산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고 한 사람이 장갑을 낀다면 우리는 저 사람이 곧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추측한다.

흔히 장갑을 끼는 것은 지문을 남기지 않는 완벽한 범죄의 기초 단계처럼 여겨지지만 이제 그런 방법도 현대 과학에는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게 됐다.

범행에 사용된 장갑, 의류 등에서도 지문을 찾아낼 수 있는 레이저장비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땀과 같은 분비물에는 리보플라빈 등 몇 가지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 성분이 묻은 섬유에 레이저 광선을 쏘이면 지문형태가 나타난다.

만약 범인이 사건현장에 남긴 혈액 자국을 모두 물로 닦아냈다면?
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매춘을 하던 Y양이 흉기로 이마부위를 맞고 사망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미군 M 일병에게서 증거물을 찾지 못했고 그가 입었던 옷은 이미 세탁된 후였다.

육안으로는 혈흔이 식별되지 않자 루미놀(Luminol)용액을 옷에 분무했다. 미량의 희석된 혈흔이 검출됐고 피해자와 동일한 혈액형이었다. 루미놀은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는 1만배 희석된 혈액 성분과 접촉되더라도 강한 형광의 빛을 발산한다.




모발감식으로 마약복용 밝혀


마약수사에서도 첨단 수사기법은 사용된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마약을 복용한 사람들이 소변검사의 한계성을 잘 알고 있어 시간이 끈 뒤 마약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나 최근 개발된 모발감식법은 그들의 거짓 주장을 낱낱이 벗겨내고 있다.

2002년 유명남자연예인 K씨가 마약을 복용했다는 첩보가 입수돼 소변검사를 실시했지만 마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경찰은 K씨의 모발을 검사하기로 했지만 K씨가 머리를 삭발하고 다녔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채취할 수 없었다.

소변의 경우 마약성분이 3~4일이면 배설돼 버리지만 머리카락 등 체모에는 6개월에서 1년까지 잔존한다. 모발의 뿌리인 모근까지 퍼진 모세혈관을 통해 마약성분이 모발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K씨가 약간의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에 착안 수염을 채취해 분석했다. 결국 엑스터시 양성반응이 나온 K씨는 마약 복용혐의를 시인했다.



사이버수사대 등 대응 만전


최근에는 사이버 범죄가 증가하면서 디지털 증거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디지털 증거분석(Digital Forensics)이란 저장 매체에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 범죄 단서를 찾는 최신 수사 기법이다. 해킹이나 피싱은 물론 개인정보 유출처럼 IT와 직`간접으로 연관된 범죄가 늘면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충남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4월 자신이 근무했던 회사의 업무용 e-메일을 열람, 자신이 새로 설립한 회사 업무용으로 무단 활용한 이 모(39)씨를 구속했고 해외 도박사이트, 음란채팅 사이트, 성매매 알선 사이트 등 사이버상의 각종 범죄행위를 디지털 증거분석으로 색출해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와 각 지방청의 사이버수사대는 CD나 파일 복구, 로그 기록 분석 등 다양한 디지털 증거분석으로 지난해 모두 8만 1338명을 검거했다.

범죄자와 수사관, 도망가는 자와 쫓는 자의 싸움에서 항상 도망가는 사람이 조금 앞서 달리는 듯 하다. 그러나 첨단 과학 수사로 무장하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수사관들에게 찾지 못할 증거, 범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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