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선호 권산부인과 원장 |
지난 토요일에는 30년 전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헤어졌던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을 만나는 반창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몇몇이 한달 전부터 주소 파악과 연락을 하느라 수고를 많이 하였지만 막상 그날이 되어 만사 제쳐놓고 모임 장소에 나가면서 느끼는 설렘은 연인과 데이트하던 시절 느꼈던 느낌 이상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을 하니 서로들 너무 반가워 너나 할 것 없이 굳게 악수를 나누고 포옹도 하며 금방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은 한 세대 입니다. 그 세월은 길기도 하였지만 빠르기도 하였습니다.
늘 우리들의 장래를 걱정하시기도 하고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시던 담임선생님께서는 벌써 작고하셨고 몇몇 사랑했던 친구들 또한 세상을 달리해서 만나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고교시절의 앳되고 순진한 모습들이 얼굴에 아직도 고스란히 배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넓어진 이마와 주름, 굵어진 허릿살에는 긴 세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그간 회포와 어려운 세파를 거쳐오면서 저마다 느꼈던 무용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소주잔이 오갔고 서로들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제 지갑을 열어 맥주집과 해장국집을 오갔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돈,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 명예 등을 끝없이 좇다보니 심한 스트레스와 각박해지는 인심에 상심을 하기도 하고, 꽃이나 애완동물, 취미, 그리고 연인들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늘 행복에 관한 한 결핍증 환자가 되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옛 친구들을 만나 순수했던 옛 추억을 함께 반추하며 대화를 하다보면 우리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서는 돈이나 명예, 꽃보다도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고 인간과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정’을 한없이 갈구하고 있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옛친구가 어려울 때는 때로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이 되어 줄 수도 있겠지만 하루하루 피곤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본래의 인간성을 찾아가는데 중요한 치료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멀리에 벗이 있어 찾아오니 반갑지 아니한가.” 친구를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친한 벗의 고마운 점은 함께 바보스러운 말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산중에서 어둠을 맞는다면 당신은 진실로 나 혼자가 아닌 한 사람의 친구가 필요함을 깨달을 것이다.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그들과 함께라면 바보가 되어도 좋기 때문이다.
무척 덥던 여름도 이젠 물러가고 사색의 계절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진정한 인간의 냄새, 삶의 냄새를 물씬 느껴볼 수 있는 옛 친구들을 한번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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