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라 첫 스크린 데뷔 ‘합격점’
‘안녕, 형아’를 만든 MK
열살 꼬맹이 영래(박지빈)는 밀수 화장품을 파는 엄마(신애라)와 살고 있다. 영래는 “아버지 없는 호로자식” 소리가 가장 싫다. 남편 없이 아들을 키우느라 억척스러워진 엄마는 시장통에서 남들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 일쑤다. 어느 날 영래는 춘자 아줌마로부터 아버지가 서울에 살아있다는 말을 듣는다. 서울 갈 차비를 모으기 위해 아이스케키 장사를 시작한다.
‘안녕, 형아’가 소아암이라는 소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겁고 처졌던 반면 ‘아이스케키’는 달착지근하고 시원한 케키 맛처럼 경쾌하고 밝다.
영화는 영래의 좌충우돌 ‘케키 알바’ 생활과 ‘아빠 찾아 삼만리’에 머물지 않고, 영래와 송수(장준영)가 티격태격하며 쌓아가는 우정, 영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인백(진구)과의 관계를 버무려, ‘톰 소여의 모험’류의 재미와 감동, 눈물을 제조해낸다.
라디오 학원, 국제 라사 등 지금은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상점 간판들이늘어선 거리, 조악한 그림이 걸린 극장, 케키통을 멘 빡빡머리 아이들, 골목에서 들리는 구리무 아줌마들의 “동동구리무 사려∼”하는 소리…. 주인공은 아이들이지만, 30여년 전 그 시절의 풍경을 고스란히 되살린 화면은 중장년층의 가슴을 두드릴만하다.
가난에 찌든 아이들, 경찰의 눈을 피해 밀수화장품 장사를 하는 영래 엄마와 ‘빨갱이의 자식’으로 낙인 찍혀 숨죽인 채 살아가는 인백 남매의 모습 등 시대의 아픔도 잊지 않는다.
가난했던 시대상황, 캐릭터들의 전형성 등 ‘아이스케키’에는 관습적인 설정과 대사들이 많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에게 감정을 끌어내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단편 ‘운동회’ ‘으랏차차’ 등으로 어린이 심리에 주목했던 여인광 감독은 장편 데뷔작 ‘아이스케키’에서도 세심함을 풀어놓는다. 소년적 감수성이 밴 연출은 모든 세대의 공감을 끌어낼 만하고, 부모의 부재에 대한 슬픔도 그 상투성에도 경직되지 않게 담아냈다. 덕분에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반전도 찡한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이 영화가 흥행한다면 일등공신은 전라도 사투리를 오물거리는 아이들이다. 남도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창까지 배웠다는 아이들은 정말 그 시대를 살았던 아이들처럼 천연덕스럽다.
‘안녕 형아’로 뉴몬트리올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1995년 생의 박지빈이 호연을 보여줬고, 처음 스크린 나들이를 한 신애라도 무리없이 영화에 녹아들었다.
시대극이 줄 수 있는 향수와 재미에 보편적인 가족애를 섞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꽤 괜찮은 가족 영화다. 한국영화는 가족 영화에서도 발전의 가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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