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균·윤지혜 등 열연도 돋보여
‘예의없는 것들’은 좀 엉뚱한 영화다. 그러나, 하지만 같은 앞 말
겉모양은 영판 사회고발극이다. 영화 속의 예의 없는 것들은 부패한 정치인, 돈만 밝히는 목사와 대학교수, 가난한 이들을 괴롭히는 불법 재개발업자 등 사회에 반칙을 일삼는 자들이다. 킬러는 이들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예의 없는 것들의 비리를 고발하고 설명하는데는 인색하다. 그러니 느닷없는 비리 권력층을 향한 심판은 개운한 쾌감이 없다. 섬뜩하면서 씁쓸하다.
영화의 관심은 온통 킬러의 개인사에 쏠려 있다. 곱슬머리에 시커먼 선글라스, 가죽옷을 입은 말없는 침묵의 사냥꾼. 폼도 그럴 듯 하고, 예의 없는 것들만 분리수거한다는 나름의 원칙도 있다. 하지만 뭔가 어설프다. 이름은 킬라다. ‘에프 킬라’의 그 킬라.
혀 짧은 발음이 ‘쪽 팔려’ 아예 입을 다물었다. 소원이 있다면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헤어진 첫사랑을 찾아 멋진 한마디를 건네는 것. 1억원만 있으면 혀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킬러가 됐다. 그러나 시를 쓰고 버려진 아이를 거두는 맑은 영혼을 가진 그가 킬러로 성공하기란 애당초 될 일이 아니었다. 실수투성이에 어줍은 그의 행동은 우습다.
여기까지 종합해보면 사회고발성 짙은 블랙코미디 쯤으로 읽힌다. 그러나 방점이 찍히는 건 사회고발이 아니라 코미디다. 한 술 더 뜨는 건 말없는 주인공을 대신한 ‘마음 속의 화자’, 내레이션이다. 킬라가 여자와 관계를 갖기 전에 그녀가 물을 먹이자, “소도 잡기 전에
킬라에게 육탄공세를 퍼붓는 끈적녀가 붙으면서 외롭던 생활에 변화가 생긴다. 귀가길에 마주친 꼬마도 함께 살게 되면서 킬라의 계획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킬라의 내면을 온전히 따라가는 재미는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개인사에 집중하면서 뭘 말하려 했는지 길을 잃는다. 킬라와 끈적녀를 제외한 주변인물들은 색이 바랬고 도발적인 설정에 비해 드라마도 너무 다소곳해졌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말 못하는 자의 심경을 기막히게 그려냈던 신하균은 이번에도 말없는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핏발 선 눈과 입가의 주름으로 그려내는 변화무쌍한 표정연기는 “역시 신하균!”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고괴담’ 이후 이렇다할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윤지혜도 마스크에 담긴 묘한 매력을 터뜨리듯 발산한다.
박철희 감독은 “세상에 예의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삶이 거칠고 고단하다. 아닌 척 양심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킬라의 칼은 관객을 향할지 모른다. 나를 향할지도 모르고. 18세 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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