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소천하신 어머니가 눈감기 하루 전 나에게 남기신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면서 열무김치 멀국에 보리밥 말아먹고 싶다는, 무토 막처럼 촌스런 한 말씀을 하셨다. 평소대로 교회 잘 나가지 않는 것을 꾸짖는다든지 하다못해 형제끼리 잘 지내라는 유언을 기대했으나고작 열무김치 멀국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어머니가 무슨 형이상학적 달변일까? 그러나 어머니다운 한 말씀이었다.
보리밥에 열무김치 한 종지는 어느 집에서나 보통으로 먹던 밥상의 기본메뉴였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실 때 창황망조 한가운데서 나는 가슴으로 웃었다. 남이 먹는 대로 먹어라, 남이 입는 대로 입어라, 남이 사는 대로 살아라 하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다름아니었다. 뾰쭉한 말, 기이한 말, 현학적인 말 한마디도 해보지 못한 어머니는, 열무김치 멀국이야기로 모든 것을 말씀하시고 소천하신 것이다.
마음에서 정신적인 열망이 사라지면 물질적인 열망이 찾아와 마음을 황폐하게 한다. 학문 예술 애증이 소멸하면 맛있는 것, 멋있는 것, 뜨거운 것,자랑하고 싶은 것, 높이 올라가고 싶은 것 등 그런 천박한 열망만 남는다. 30평형이면 4식구 기준으로 문명인 1명당 거주 면적을 7평으로 따져도 2평이 남는다. 그런데도 45평 60평 120평 한없이 넓은 면적으로 웰빙의 욕망이 넓어진다.
웰빙 좋고, 명품 좋고, 그 한가운데 있는 당신은 더운 빛나고 아름다운가. 한번밖에 살지 못할 인생 나 하고 싶은대로 살고 싶다며 돈을 분별없이 쓴다. 돈이 없어지면 남의 호주머니를 넘겨다 보게 된다.
돈을 빌리고 읍소하여 꾸다보면 은행대출로 가게 된다. 명품놀이에 취하다 보면 비로소 자기가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알게된다. 세상이 쓸쓸해진다. 가족마저 간 데없다. 고독을 알게된다.
영조때 실학자 이익(李瀷)은 그가 지은 성호사설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이치를 설명한다. 인생의 모든일은 악은 없애고 덕을 쌓아 가는 두 가지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악을 욕심에서 생기지만 욕심은 원래 악한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욕에만 골몰하기 때문에 비로소 허물이 생겨나고 여러 가지 악은 거기에 뿌리내리게 된다. 이 악의 뿌리가 마음속에 도사려 부유함, 귀함, 편안함을 지향한다는 것.
따라서 부유하고 자하면 탐내는 마음이 생겨나고 귀하고 자하면 오만한 마음이 생겨나며 편안히 즐기려면 탐욕과 음탕과 태만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나보다 더 부유하고 편안한 것을 보면 질투심이 생기고 내 것을 빼앗아 가면 분한 마음이 생겨 사는 것이 지옥처럼 괴롭다. 이익은 300여 년 전에 이미 명품 찾아 헤매는 인간의 모습을 마치 지옥도처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머니 소천하신 지 어언 20년.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열무김치 멀국도 이제 웰빙음식이 되었으니 세상은 돌고 도는가 보다. 짐승인 소도 살아생전에는 맥주 마시고 고전음악 감상하다가 죽어서는 서릿발이 부채꼴로 퍼지듯 그림 같은 고기를 남긴다.
그런 명품고기만 먹던 부잣집 이 서방도 죽기는 마찬가지더라.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게 하고 누우니 그 이상 즐거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웰빙이요, 명품중의 명품인 그런 행복함이여, 남이 알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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