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나영 서부초교 교사 |
여객선은 흰 포말을 일으키며 뱃고동 소리와 함께 30분을 시원스럽게 달려 첫 번째 섬에 닿았다. 月島, 달월이라고도 한단다. 선착장 길 옆으로 쌓여있는 김양식용 그물과 주꾸미를 잡는 데 활용하는 소라껍질들이 쌓인 길을 따라 섬 정상에 오르니 흉물스런 폐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교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오른쪽에 “○○○선생님은 주민들의 삶의 길잡이요, 희망이며, 영원한 동반자였다. 그 공을 기리고자 이 돌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기억코자 한다”는 내용의 공적비가 텅 빈 교정을 지키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분이 어떤 일들을 하셨기에 이렇게 공적비까지 세워 주었을까? 호기심에 섬 주민들을 만나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1974년 개교한 학교에 혼자 부임해 학교 환경을 공원 같이 만듦, 복식 수업을 하면서도 군내 3위로 학력을 향상시킴, 6년 간 해마다 1회씩 무료로 도시 체험학습을 실시, 예능 교육 활성화를 위해 전교생 48명이 모두 참여한 관현악단을 구성, 학생 음악 경연대회에 출전 입상.’
그 뿐인가 선생님은 섬 주변에 있는 무인도를 이용해 오리, 닭, 염소, 토끼 등을 사육, 전교생의 학습 준비물은 물론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조달했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는 입학 등록금 전액을 지원했고 육지까지 가서 이발을 해야 하는 불편을 덜어 주기 위해 자비를 들여 이발소를 설치해 전교생에게 손수 무료로 이발을 해줬다.
야간에는 글을 몰라 불편해 하는 주민들을 위해 한글을 지도해 문맹을 퇴치시키고 주민들의 숙원 사업인 마을 앞 선착장 공사를 관계기관을 찾아다닌 끝에 완공시키는데 노력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낙도에 발전기를 구입해 전기 불을 밝히고 TV시청도 할 수 있게 했다.
몸이 아픈 주민들을 위해 대전 모 병원의 협조를 받아 평생 무료 진료를 추진했다. 이러한 업적들로 개교 4년 만에 전국 새마을 최우수학교로 선정돼 문교부장관으로부터 표창과 상금도 받았던 것이다.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어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분은 남들이 회피하는 조그마한 시골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조용히 정년을 맞고 계셨다. 선생님께서는“내가 노력한 만큼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보면 나는 한없는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런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교문을 나서니 눈앞에 바다같이 넓은 예당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번 방학은 나에게 교육자로서의 내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귀중한 보물을 얻는 기회가 됐다. 나도 모두에게 존경받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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