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근 소설가 |
법조 비리가 터질 때마다 자성과 비리 근절대책을 내놓았지만 그 후 법조비리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검사들이 변호사로부터 향응과 청탁을 받아 말썽이 난 의정부 비리나 대전 비리가 터졌을 때도 사법부는 자성과 청렴을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의식 속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강박관념이 팽배하고 있지 않은가.
사법부는 양심과 인권의 마지막 보루다. 사법신뢰가 무너지면 우리 사회의 가치관뿐만 아니라, 국가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먼저 사법부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사법부가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행태는 그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사법부를 정치의 시녀라고까지 비아냥거렸겠는가.
오히려 사법부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는 독재정권과 맞서 과감히 싸워온 민주인사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독재정권의 방패막이를 해온 전력이 많이 있다. 헌법의 정신과 원칙을 구현하지 못하고 개념법학적인 조문읽기만을 거듭하면서 기득권의 보호막이 되어준 과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교수재임용제에 대한 재판에서 과거 사법부가 고수해온 태도다. 1975년 유신정권 때 도입된 교수기간임용제는 옛 사립학교법 제53조의 2 제3항이 2003년 2월 27일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종언을 고할 때까지 민주 교수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학문과 연구, 사회봉사에 매진하려던 다수의 교수들은 비리사학 경영자와 교육부, 사법부의 사립학교법 규정을 내세운 집단적 횡포 앞에 추방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천신만고 끝에 30년 만에 대학교원기간임용제 탈락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80여명의 교수들이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사립대 교수들은 교육부의 수구적 부패세력을 등에 업고 억지 법리를 내세워 버티기 작전으로 사학재단의 횡포에 다시 법원의 판결을 구하고 있다.
이제 재심 판결에서 인용결정을 받은 사립대학 교수들은 마지막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해직 교수나 국민들은 사법부가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재판으로 거듭나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관의 자질이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법원장이 앞으로 법관 연수 과정에 윤리강좌 교육을 확대 편성하기로 한 것도 옳은 판단이다.
역설적으로 들릴는지 모르지만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법이 필요 없는 사회다. 저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내 마음에는 양심이 빛난다는 칸트의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양심과 순리가 통하는 사회에서는 법이 필요 없다.
법(法)의 의미도 水변에 去자가 아닌가. 법은 물같이 흘러간다는 의미는, 법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법은 순리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서도 도덕과 양심이 우선돼야 한다. 논어 위정편의 법제로써 다스리고 형벌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써 다스리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잘못을 수치로 알고 또 바르게 된다는 가르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조비리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책보다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법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고, 국민적 저항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사법부는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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