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정자 한국무용가 |
휴가라는 형태의 피서는 이미 다녀왔고 그저 얼음 냉커피와 에어컨 내지는 선풍기에 의존하면서 신문도 꼼꼼히 보고…, 와중에 ‘양념을 많이 하면 제간을 잃는다’ 라는 구절이 들어왔다.
내용인즉 모든 음식재료들은 재료마다 각각 그 고유의 맛이 있는데 거기에 온갖 양념 내지 조미료들을 너무 많이 사용해 그 고유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장을 한 듯 안한 듯 은은해서 얼굴의 모습과 표정이 그대로 드러날 때 아름다움을 느끼는 반면 덕지덕지 덧칠해 거의 분장 수준이라면 아름다움보다는 부자연스러움과 묘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과다한 성형수술의 부작용으로 망가질 때로 망가진 마이클 잭슨의 녹아내리는 코는 황당함과 안타까움 그 자체다.
무용작품에 있어서도 같은 룰이다. 줄거리가 있고 그 내용을 표현하는데 굵은 선 몇 가지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부실하거나 빈약할 때, 또는 그 내용을 표현하고자 하는 춤이나 형식이 부족할 때 말이(치장이) 많아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럴 때면 꼭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모방이 지나쳐 무용가의 철학이나 미관 내지는 그 내용을 담는 형식마저 전혀 존재치 않은 결과로 다른 작품들의 좋은 장면들만 여기저기에서 빌려와 짜깁기를 해놓은 듯한 작품들을 접했을 때의 그 공허함을 생각나게 한다.
한 편의 좋은 작품을 보러 갔다가 잔뜩 외관에만 치중한 화려한 버라이어티쇼를 보고 나오는듯한 씁쓰레함의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떠한가라는 자기 점검의 시간도 적극 가져보지만 말이다.
마치 음식재료는 다 다른데 지나친 양념과 조미료로 그 고유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오이가 오이 맛을 낼 줄 알고 가지가 가지 맛을 보여주어야 하듯 나에게서도 치장하지 않아도, 예쁘게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내 춤이 보여지면 좋겠다. 무대위에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그 넘치는 기운이 무엇을 말하는지 관객이 알아주는 경지가 됐으면 좋겠고, 그 기운이 나만의 고유 색채가 되어 맛있는 춤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깊숙히 인식되어지면 좋겠다.
그러한 경지를 위해서 오늘의 휴식과 시간은 자신을 갈고 닦는데 보내야 할 것 같다. 너무나 간이 세어 음식맛을 느낄 수 없는 시대에 살면서 그래도 나 만은 담백함을 선택하고 싶고, 그 담백함을 선택해도 충분히 나 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나, 너 어디에 있니?’ 가 아니라 ‘나 여기에 있고 너 거기에 있다’와 같이 서로의 존재를, 모든 것을 존중할 수 있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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