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을 많이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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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을 많이 하면…

<문화 초대석>

  • 승인 2006-08-20 17:11
  • 엄정자 한국무용가엄정자 한국무용가
더위
▲ 엄정자 한국무용가
▲ 엄정자 한국무용가
를 핑계삼아 요즘은 느긋하게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꼭 이번 주에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뒤로 미루거나 조율하면서 덤으로 얻어진 시간들을 마음껏 누린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아무것도 급할 게 없는 이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음의 여유로움에 스스로 만족해 하면서 말이다.

휴가라는 형태의 피서는 이미 다녀왔고 그저 얼음 냉커피와 에어컨 내지는 선풍기에 의존하면서 신문도 꼼꼼히 보고…, 와중에 ‘양념을 많이 하면 제간을 잃는다’ 라는 구절이 들어왔다.

내용인즉 모든 음식재료들은 재료마다 각각 그 고유의 맛이 있는데 거기에 온갖 양념 내지 조미료들을 너무 많이 사용해 그 고유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장을 한 듯 안한 듯 은은해서 얼굴의 모습과 표정이 그대로 드러날 때 아름다움을 느끼는 반면 덕지덕지 덧칠해 거의 분장 수준이라면 아름다움보다는 부자연스러움과 묘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과다한 성형수술의 부작용으로 망가질 때로 망가진 마이클 잭슨의 녹아내리는 코는 황당함과 안타까움 그 자체다.

무용작품에 있어서도 같은 룰이다. 줄거리가 있고 그 내용을 표현하는데 굵은 선 몇 가지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부실하거나 빈약할 때, 또는 그 내용을 표현하고자 하는 춤이나 형식이 부족할 때 말이(치장이) 많아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럴 때면 꼭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모방이 지나쳐 무용가의 철학이나 미관 내지는 그 내용을 담는 형식마저 전혀 존재치 않은 결과로 다른 작품들의 좋은 장면들만 여기저기에서 빌려와 짜깁기를 해놓은 듯한 작품들을 접했을 때의 그 공허함을 생각나게 한다.

한 편의 좋은 작품을 보러 갔다가 잔뜩 외관에만 치중한 화려한 버라이어티쇼를 보고 나오는듯한 씁쓰레함의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떠한가라는 자기 점검의 시간도 적극 가져보지만 말이다.

마치 음식재료는 다 다른데 지나친 양념과 조미료로 그 고유의 맛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오이가 오이 맛을 낼 줄 알고 가지가 가지 맛을 보여주어야 하듯 나에게서도 치장하지 않아도, 예쁘게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내 춤이 보여지면 좋겠다. 무대위에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그 넘치는 기운이 무엇을 말하는지 관객이 알아주는 경지가 됐으면 좋겠고, 그 기운이 나만의 고유 색채가 되어 맛있는 춤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깊숙히 인식되어지면 좋겠다.

그러한 경지를 위해서 오늘의 휴식과 시간은 자신을 갈고 닦는데 보내야 할 것 같다. 너무나 간이 세어 음식맛을 느낄 수 없는 시대에 살면서 그래도 나 만은 담백함을 선택하고 싶고, 그 담백함을 선택해도 충분히 나 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나, 너 어디에 있니?’ 가 아니라 ‘나 여기에 있고 너 거기에 있다’와 같이 서로의 존재를, 모든 것을 존중할 수 있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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