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만의 말이라고요? 조금만 귀기울여 보세요

신세대만의 말이라고요? 조금만 귀기울여 보세요

어머~ 유행이 보이네

  • 승인 2006-08-17 17:22
  • 김덕기 기자김덕기 기자
된장녀.고추장남.쌩얼.사오정.안습…
갑작스레 왠 쌩뚱맞은 소리냐구요? 이같은 용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독자도 있을 듯 싶습니다. 그래도 잠시 단어에 시선을 쏟으면 얼큰이나 된장 등 그동안 알고 있던 친숙한 용어에 반가움을 갖는 독자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뒤에 무언가가 붙어있으니 알듯 말듯함에 ‘아리송해’를 외치는 것도 무리는 아닐겁니다.

이들 용어는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중 일부랍니다. 제대로 알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지식검색을 할 수 밖에 없지요.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운 말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을 순 없겠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겠죠?




#1 재치와 기지 가득… 표현도구로 부상

혹시 ‘얼큰이’란 말에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대전의 대표음식인 ‘얼큰이 칼국수’를 자주 보고 먹어봤기 때문에 고춧가루가 확 풀어진 국물을 떠올리지나 않았는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산이랍니다. 신조어로서 ‘얼큰이’는 젊은층 사이에서 ‘얼굴이 큰 사람’을 일컫습니다. 나이지긋한 어른들 입장에선 이같은 뜻풀이를 듣고 ‘나랏말씀’ 가지고 장난친다고 역정을 낼 지도 모를 일이지요.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된장녀’는 어떤 가요. 많은 이들은 어감상으로 ‘된장을 만지는 여인’쯤으로 알았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게 웬 걸. 전혀 다른 뜻으로 통용된답니다. 된장과 여자가 합쳐진 것까지는 금방 알겠는 데 ‘외국 고급 명품이나 문화를 좇아 허영심이 가득찬 삶으로 일관하여 한국 여성의 정체성을 잃은 여자’를 꼬집은 말이라는군요.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대표단어인 ‘된장’과 여자를 상징하는 ‘녀(女)’의 만남이 왜 이리도 아름답지 못한 걸까요. 혹자는 ‘된장녀’를 전통적인 관습 중 여성에게 이로운 점은 당연시 여기고 불리한 점은 불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에 붙여 쓰기도 합니다. 된장의 부정적인 면에 비춰 비하하는 뜻도 있지만 똥과 된장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도 있다고 하는 군요. 여하튼 좋은 이미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일부 남성들의 공격에 여자들도 가만있지는 않네요. 바로 ‘고추장남’으로 반격하는 군요. 이 신조어는 능력은 없으면서 양주만 마시고 돈많은 여성과의 결혼을 꿈꾸는 남성을 비꼬는 말이라고 합니다.

‘쌩얼’은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 유행처럼 떠돌고 있는 용어입니다. 말하자면 ‘나는 화장을 안해도 이렇게 괜찮은 데… 넌 뭐니?’라는 식입니다. 두터운 ‘화장미인’들을 단숨에 넉다운시켜 버리는 셈이지요. ‘쌩얼’은 어쩌면 ‘얼짱’의 한줄기에서 파생된 개념인 듯 보입니다. ‘얼짱’이 어떻게든 예쁜 여자를 칭했다면 ‘쌩얼’은 오직 화장 안한 맨얼굴을 말한다는 범주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이같은 신조어를 만든 사람들의 재치와 기지(?)에 찬사를 보내야 할 지 비난을 쏟아야 할 지 헷갈립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매일 매일 양산되는 신조어는 대세라는 거지요. 그 말뜻에 담긴 저급성과 고급성을 따지기 전에 표현 도구라는 겁니다. 여기에 뭔가 남과 다르고 싶다는 욕구가 분출돼 신조어를 만들고 그 용어를 또래나 집단 구성원간에 애용하면서 상호 동류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2 마구잡이 용어 남용보다 한글사랑 이끌어야

젊은이들은 통신용어를 쓰며 자기들끼리의 일체감을 확인하고 시대를 앞서 가는 듯한 느낌을 갖지요. 기성세대들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조어를 습득해 감각이 떨어지는 아저씨, 아줌마 소리를 듣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신조어는 젊은이들만의 공유물이고 창작품일까요?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한 업체가 중학생과 대학생, 20대 여자회사원, 중년남성, 중년여성 이렇게 5개 그룹별로 일정인원을 선정해 다양한 분야의 신조어를 대상으로 조사해 봤더니 놀랍게도 신조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세대는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0대 중학생은 20대보다 점수가 떨어졌고 같은 20대끼리도 직장인과 학생간에 이해도가 틀리게 나왔답니다.

서로의 관심분야 등이 다른것도 한 이유가 됩니다. 똑같은 모국어를 쓰면서도 신조어 앞에선 언어소통의 장벽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도 국어나 영어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어휘력이 풍부한 사람이 신조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눈길을 모읍니다.

신조어를 좋아하고 싫어할 순 있겠지요.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신조어에는 시대적인 문화현상과 인간의 삶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신조어는 그 시대를 대변하는 유행어로 회자됩니다.

우리나라 국립국어연구원도 해마다 신조어를 정리해 발표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신조어를 양산하는 사람들은 좀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우리말이 신조어에서도 홀대받기 때문이지요. 신조어가 꼭 필요하다면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리는 혜안을 갖고 연구했으면 합니다.

우리말을 놔두고 마구잡이로 짜여진 용어는 왠지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마구잡이의 신조어가 난무한다면 별도의‘신조어사전’이 있어야만 우리국민끼리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올지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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