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비사]69. 해방이전 이야기 下

[충청비사]69. 해방이전 이야기 下

“일본이 졌디야” 시골장터 달군 만세 함성

  • 승인 2006-08-17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전세 기운 일본, 우리 민족 핍박 극에 달해
日천황 ‘무조건 항복’에 온동네 해방 기쁨

日 순사 쫓겨가고 징용자 돌아오자 광복 ‘실감’
이승만.김구.김일성 등 출현 정국 또 소용돌이







개전 후 미얀마, 싱가포르, 자카르타까지 진격했던 일본군은 미.영의 반격에 밀리기 시작했다.

라바울전투, 필리핀의 레이테만, 산호해 해전 등에서 일본군은 연전연패, 불침항모(不侵航母)라던 ‘아카기(赤城)’마저 침몰,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山本五十六)’가 전사했다.

미군은 이를 기점으로 더욱 고삐를 조이며 일본군의 태평양기지 ‘유황도’를 점령한데 이어 ‘오키나와’에 상륙을 했다.

전세가 이렇듯 기울었는데도 일본은 본토결전(本土決戰)을 외치며 광분했으나 B-29 미 폭격기는 이무렵 일본의 중요도시를 폭격, 군수공장과 산업시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B―29는 ‘하늘의 요새’라는 별명에 걸맞게 일본의 전 국토와 조선상공을 누비고 있었다. 기체가 크기로도 유명하지만 폭탄적재량은 말할 것 없고 비행고도에 있어 초특급이라 해서 ‘하늘의 요새’로 불렀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 폭탄을 쏟아 붙는데도 일본군은 속수무책으로 ‘구야시이(분하다!)’라며 이를 갈 뿐. 일본의 전투기, ‘하야부사’나 신예기라는 ‘돈류’로는 추격이 불가능했고 고사포를 쏘아대도 미치질 않았다. 이에 집집마다 방공호를 파고 피신하는 지경에 이르고도 승전만을 외쳐댔다.

그 무렵 갯마을 상공에도 B-29 폭격기가 유유히 비행운(飛行雲)을 뿜으며 날아다녔고 때로는 붉은 별을 동체에 새긴 소련 전투기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 때면 주재소의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고 보초를 서던 소학생은 ‘적기내습’을 외치며 방공호에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그때 포구와 장터의 경기는 말이 아니었다. 비단가게 중국 상인과 조선인식당 등은 간판만 붙어 있을 뿐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술집에 가봐야 옥수수로 빚은 시큼한 막걸리뿐이고 식량을 통제하는 통에 ‘도토리 묵’ 정도를 내놓았다. 이때 소학교에선 ‘검도’를 가르쳤고 미군이 상륙하면 ‘죽창’을 들고 나가 싸워야 한다며 격렬한 구호를 외쳤다. ― 1억 국민은 불덩어리다. 미.영은 망한다. ― 라고.



전시 하에서도 명천 인천(仁川)간의 연락선은 조심스
럽게 내왕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 무렵 ‘군속’ 신분증을 지닌 40대 건장한 사나이가 연락선에서 내리자 일본 순사가 이를 검문하던 중 좀 수상쩍었던지 꼬치꼬치 캐묻다가 주재소로 가자고 다그쳤다. 선착장 제방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이때 일행인 듯한 한 사나이가 사람 틈에서 “왜 밀어요?”라고 소리치는가 싶더니 일본순사를 밀어붙여 칼을 차고 정복한 순사가 바닷물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포구사람들이 건져냈다.

바닷물을 먹고 눈이 시뻘겋게 충혈 된 순사는 “아까 그 놈 어디 갔느냐?”고 소리쳤다. 하지만 건문을 당하던 그 남자는 순사가 타고 온 자전거에 올라타더니 바람 같이 도망쳐 버렸다. 소동이 벌어진지 한 참 뒤에 주재소에서는 순사 두 사람이 달려와 하선한 승객들을 주재소로 연행 당시 상황을 조사했다. 여기서 순사를 바다에 밀어 넣은 자가 드러났는데 이는 포구사람들에겐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는 포구와 인천을 연락선을 이용, 내왕하며 이 고장의 토산물을 사다가 인천에 넘기는 한편 인천으로부터 여성화장품을 암거래하던 장사꾼이었다.

그럼 그가 왜 순사를 바다에 밀어 넣었는가? 밤을 새우며 문초한 결과 또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 순사를 바다에 밀어 넣은 자는 이 고장 마을을 돌며 등짐장수를 하던 그 자에게 슬쩍 손에 쪽지를 쥐어 주는 걸 본 사람이 있어 이를 실토했다.

그 등짐장수는 고물, 쇠붙이 심지어는 삼걸(麻皮) 같은 것을 수집하며 분, 크림, 같은 것과 맞바꾸며 산골 농가를 찾아다니던 볼품없는 행상이었다. 그는 그 소동이 일어나자 현장을 떴지만 나중에 검거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사건은 주재소에 수사본부를 두고 본서 형사와 주둔중인 헌병까지 합세, 수사를 펼쳤다.

나중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검문을 받던 그 남자는 스파이(spy)로 서해에 정박 중인 중국어선 ‘쟝크’를 타고 탈출했다는 풍문이고 인천을 내왕하던 야미장수와 마을 농가를 찾아다니던 등짐장수는 같은 조직원이었다고 했다. 그 등짐장수는 이후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4월 29일 ‘천장절(일왕의 탄생일)’ 행사를 학교에서 거행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무산되어 버렸다.





소학생들이 등교 도중 모두 집으로 돌아가거나 중도에서 떼 지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순사들이 호각을 불며 등교를 독촉했는데 끝내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한 것이다. 출처불명의 루머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내용은 ― 일본 헌병이 오늘(4월 29일) 학생들의 피를 뽑아간다. ― 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장터와 학교 교문에 ‘일본은 곧 항복한다.’라는 벽보가 붙어 읍에서 헌병과 형사가 달려온 일까지 있었는데 나중에 들려온 풍문으로는 ‘등짐장수’의 소행이라 했다.

해방 전해의 일이다. 면내의 아녀자와 60대 노인들을 학교강당에 모아 놓고 시국강연을 펼치는데 별난 일이 발생했다. 읍에서 나온 연사의 실언이 문제가 되어 순사에 연행된 사건이 그것이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밀려 ‘본토결전’을 외치며 광분하던 때 일로, 전황을 설명하다 비유한 것이 말썽을 빚었다. ― 전쟁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개(犬)싸움과 같은 것이 되어 집 앞에서 싸울 때는 용감하다가도 멀리 타동(他洞)에 나가면 주춤거리며 밀리는 수가 있다. ― 라는 대목이 문제가 되었다.

“황송하옵게도 천황폐하께서는….” 이 말이 나오면 누구든 부동자세를 취해야 할 때 일로 ‘황군’을 개에 비유했으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일반인도 아닌 초빙강사였으니 일이 우습게 되어 버렸다. 그 연사는 경찰에 연행되어 곤혹을 치렀다는 후문인데 이를 두고 세상에선 설화(舌話)라 이른다던가.



전세는 몰리는데도 일인들은 절대 이긴다며 ‘가미가제(神風)’ 특공대 예를 들어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미 해군의 전함과 아무리 큰 항공모함이라 하더라도 용맹스런 ‘가미가제’ 특공대 한사람이면 족하다는 식의 원색적 선전을 했다. 실제로 ‘가미가제’ 특공대는 비행병이 폭탄을 조정하고 날아가 적함에 부딪히는 자살공격이었다.

이때 조선역사를 배우지 못한 몇몇 소학생들은 ‘가미가제’ 특공대가 자신들의 진로를 알고 이를 희망했다.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다. 이를 추천한다던 교장은 전근을 하고 ‘미야모토(宮本)’라는 독종교장이 새로 부임을 했다. 소학생 중에는 두 사람이 ‘군속’이 되어 만주로 떠난 뒤였다.

이처럼 미쳐 돌아가는 정세아래 45년 8월 15일 장터는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이며 주재소에 면장, 교장, 경방단장, 우체국장 등이 모여 침통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정오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연합국에 대해 ‘무조건항복’을 선언했지만 라디오를 갖지 못한 일반인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버섯구름이 솟아오르자 두 도시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것을 갯마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다.

이때 당혹해 한 것은 ‘소년비행병’을 지원했거나 헌병이 되겠다던 소년들이었다. ‘가미가제’ 특공대에 나가 공을 세우면 ‘야스쿠니’신사에 봉안되어 부모들이 노후 유족으로 고생은 면하리라는 그 기막힌 발상…. 하지만 이 철없는 소년들을 어떻게 나무랄 것인가. 환경과 교육이 미치는 영향은 이런 형태로 나타났다. 눈물겨운 사연이다.

8월 15일 성연장터는 무겁게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였고 모두들 무엇이 어찌되는지 두리번거리며 ‘일본이 졌디야!’, ‘손을 들었다는기여!’ 소리가 나돌았으나 그날은 그렇게 넘어 갔고 다음날 ‘박모’라는 징병기피자가 장터에 나타나 소리를 지르며 꽹과리를 치자 ‘만세’를 부르며 순식간에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학교 교정과 면사무소, 장터를 거쳐 주재소에 들어갔는데 일본 순사는 읍엘 나가고 세 명의 순사가 있었으나 기가 꺾여 이렇다 할 충돌은 없었다.

시위군중은 독종 일인 교장사택으로 몰려가 피리를 불며 징, 꽹과리를 치자 ‘미야모토’ 교장의 매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시위대는 다음날도 장터를 누빈 끝에 교장 사택에 몰려가 한동안 풍장을 울리며 만세를 불렀는데 그날 밤 일이 터졌다. 밤중에 교장 사택에 불이나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목조건물(일본식)인 사택이 불이 타자 이웃 사람들이 불을 끄려 했으나 워낙 불길이 강해 접근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읍에서 일본 헌병 10여명이 자전거를 타고 장터에 들어서며 연거푸 총을 쏘는 바람에 장터사람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공포에 떨고 있었다.

헌병과 순사가 호각을 불며 사람들을 집합시켜 놓고 차례로 심문을 받아야 했다. 헌병들은 장터 사람들이 교장사택에 불을 지른 걸로 짐작,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심문 끝에 시위대에 앞장섰던 소방대 손(孫)대장을 용의자로 지목, 거세게 다그쳤다.

그는 큰 상점을 경영하며 면사무소, 주재소, 학교 등에 납품을 하는 한편 유지로서 일인들과 밀착해 있었다. 그와 같은 친일 인사가 시위대의 앞장을 섰다는데 배신감을 갖은 듯 했다. 헌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잿더미를 헤치고 살핀 결과 타살 아닌 자살임이 드러나 헌병들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허탈해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교장 일가족은 보신탕용 개처럼 끄을려 있어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안방 다다미 위에 장작을 둘러쌓아 놓고 그 안에 두 어린 딸과 처를 밧줄로 묶어 나란히 눕혀 놓고 석유를 뿌린 뒤 불을 질러 자신은 단검으로 배를 찌르고 쥐약을 먹고 자살했음이 밝혀졌다. 그래서 순식간에 목조건물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어있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헌병들은 손 대장에게 왜 학교 신사를 때려 부수었는가를 캐물었다. 이때 손 대장은 이렇게 둘러댔다.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게 해달라고 새벽이면 몸을 씻고 남몰래 평생 참배했는데 일본이 졌다는 소식에 화가 나서 산시가 미워져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니 용서해 달라고 했다.

헌병들은 되돌아갔고 일본 순사와 공예사 주인도 일본으로 쫓겨 갔다. 얼마 안 가 징병, 징용에 갔던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돌아왔고 어수선한 가운데 온갖 풍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로 스쳐갔다.

‘막가사(맥아더)’를 등에 업은 이승만의 입경 소식과 김구의 환국설, 여운영의 연설회 개최, 박헌영의 등장설이 난무했다. 어느 상투쟁이 서당선생은 백범이 왕이 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망언도 있었다. 그 뿐만 아니다.

장백산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김일성이 축지법(縮地法)을 써서 만주로부터 평양까지 단숨에 날아왔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국호(國號)를 놓고도 ‘대동진(大東震) 공화국’, ‘조선 공화국’, ‘대조선국’ 등 별에별 호칭이 나돌았다. 이렇듯 해방정국은 탁류와 범람(氾濫)의 도가니였다.
▲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지만 라디오를 갖지 못한 일반인들은 이를 뒤늦게야 알고 장터, 학교, 주재소 등을 누비며 만세를 부르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지만 라디오를 갖지 못한 일반인들은 이를 뒤늦게야 알고 장터, 학교, 주재소 등을 누비며 만세를 부르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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