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국회’와 ‘시민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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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국회’와 ‘시민 대법원’

<시사에세이>

  • 승인 2006-08-15 00:00
  • 박범계 변호사박범계 변호사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가장 정당성 있는 기관임에도 국회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현대에 있어 복잡다기하게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갖고 서로 대립 상쟁하는 이해 주체들을 조정하고 통합해 줄 것을 국회에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기대함과 같다. 상당수의 정치학자들은 현대사회 국회의 기능이 마비된 이유를 정당제도의 폐해와 오로지 당선만을 목적으로 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에서 찾고 있다.

한 고등부장 판사가 법조 브로커 누구로부터 청탁을 받아 사건 해결에 나섰다는 일로 대대적인 조사를 받는 뉴스는 아주 고약하다. 젊은 판사들이 지역의 힘 좀 쓰는 인사로부터 중대형 아파트를 거의 무상으로 제공받아 사용한 일 등으로 사직했다는 소식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할 만하다.

이 나라의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떨어뜨릴 만한 일이다. 몽테스키외가 말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의 핵심은 사법작용에 있었고, 이는 부패되지 않은, 강직한 ‘사법관’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런 사법 영역에도 부패가 있을 법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진다면 과연 국민이 최종적으로 믿고 의지할 기관은 어디란 말인가? 이쯤 되면 ‘사설 재판소’니 하여 국민이 직접 국가의 사법작용을 대신하겠다고 나서는 현상이 있을 수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턴(Leviathan)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역사’가 과거의 일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국가의 기능에 대한 보완의 의미로 경희대 NGO 대학원 김상준 교수 등 일부 학자들 사이에 ‘시민 국회론’이 제기된 바 있다. 국회와 대법원이 헌법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국가적 이해가 걸린 중요한 사안이나 입법에 대해서 ‘시민 국회’를 통해 문제의 해결을 하자는 대안이다.

기존의 국회는 그대로 두되 중요한 사안이 대두될 때마다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시민들 중에서 시민 의원단을 무작위로 뽑아 그들로 하여금 일정 기간에 걸친 난상토론을 거쳐 3분의2 내지 5분의 4의 초다수 의결로 결론을 도출하여 이를 국민의 통합된 의사로 삼자는 이야기다. 국회는 이러한 시민국회의 결론에 대하여 가부의 표결만 할 뿐 일체의 수정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시민국회론’은 ‘의약분업사태’ ‘부안 원전수거물 폐기장 설치 사태’ ‘새만금 사건’ ‘행정수도이전 문제’ 등의 국가적 과제와 관련하여 국회가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했던가에 대한 회의와 반성에 기초한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호소력이 있으나 과연 이러한 담론이 현실적으로 채택되어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정치인들이 이러한시민국회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시민국회보다는 ‘시민대법원’ 을 생각해볼 만하다. 몇 달 전 대법원은 ‘새만금사건’에 있어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으로 새만금사업의 지속을 허용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문제는 정리된 듯 하나 갈등의 여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당시의 새만금 심리 때 만약 대법원이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할 표준적인 인사들을 무작위로 뽑아 ‘배심원단’을 구성하여 그들의 난상토론을 통한 의견을 듣고 이를 판결에 참조하였다면 어떠하였을까?
국민 대다수가 새만금 사업의 추진에 찬성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절차가 반대론자들에게도 자신들이 ‘공화국’에 살고 있다는 ‘즐거운 위안’을 주는 길이라고 믿는다.

‘공론조사’니 ‘대안적 분쟁해결 방식’이니 하여 결론 그 자체보다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과정과 방식에 있어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중시되고 있는 지금, 마침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마련한 배심제와 참심제를 혼합한 형태의 ‘국민 참여형 재판제도’가 입법 단계에 들어서 있다. 그러나 이는 형사재판에 한하는 것으로 시민국회를 대신할 현실적 대안으로서의 ‘시민 대법원’은 아니니 민주주의의 위기를 계속하여 고뇌하여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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