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래호 TJB 편성제작국장 |
또 봐야 하는 직업이다. 외화는 물론 방화도 비평적으로 본다.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은 몇 번이고 다시 감상한다.
국내는 김기덕이나 봉준호, 이재용 감독의 작품이면 10번 정도다. ‘빈집’ ‘살인의 추억’ ‘정사’ 는 발칙한 상상력을 구현해낸 문제작들이다.
특히 봉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600만을 넘겼는데 80년대 한국사회를 치밀하게 그린 수작이다. 중소도시에서 자행되는 우중의 연쇄살인사건. 살인의 대상자는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학생이다. 무능한 권력과 부패한 사회는 가녀린 여학생조차 구원하지 못한다.
‘괴물’에도 현서라는 여학생이 등장한다. 비록 ‘사고 쳐서’ 낳았지만 박강두의 소중한 외동딸 박현서. ‘괴물’은 호스트에게 끌려간 딸 아이를 구하기 위한 가족의 사투기다. 관객 역시 팔푼이 같은 박강두지만 한편이 되어 몰입한다. 강두의 아버지 희봉, 남동생 남일, 여동생 남주는 한국의 세대별 자화상이다.
영화는 각 에피소드마다 지금, 2006년 우리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소시민의 항변을 무시하는 합동장례식장의 공무원과 경찰. 정부의 발표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방송. 탈출을 방조하면서 뇌물을 챙기는 구청 과장. 총과 승합차를 불법으로 제공하고 카드를 강탈하는 조폭. 후배를 밀고하고 현상금을 챙기려는 운동권 선배. 바이러스가 없다는 정보를 은폐하고 활동하는 미국의 에이전트옐로우.
집도 절도 없는 아이들과 노숙자. 살균제 살포를 규탄하는 반미 시위대... 그야말로 더 이상 숨길게 없다. ‘영화는 가장 이성적인 작업을 통해 가장 감성적으로 표출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봉감독은 웃는 관객들에게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김기덕감독은 ‘괴물’을 ‘한국영화의 수준과 관객이 잘 만난 것’이라고 평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부정적인 평가로 보인다. 나는 2시간을 같이 본 아들의 평이 궁금했다. 녀석은 대뜸 스필버그의 ‘우주전쟁’과 줄거리가 흡사하다고 일갈하더니 CG도 엉성하고, 구성도 산만해서 별 2개 정도로 평했다. 별 5개가 최고라면 평년작도 아니라는 것이다.
짜장 ‘쥬라기공원’이나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같은 CG에 익숙한 세대고 보면 이해가 간다. 더욱이 ‘괴물’의 캐릭터가 우럭 수준이라며 비아냥거렸다. 녀석은 ‘영화는 영화다워야 한다’는 지론을 편 적이 있다. 화려한 볼거리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면 그만이라는 주장이다. 나로서는 무너지는 부성애의 부활이나, 한국을 사회학 논문보다 백배 낫게 분석한 감독정신, 배우들의 연기력을 운운할 수 없었다.
일찍이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싸우는 동안에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오랫동안 심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심연도 당신 속으로 들어와 당신을 들여다본다’라고 했다. 무엇이 주관이고 객관인지를 생명체인 삶은 잘 모른다는 뜻이다. 영화 속의 ‘괴물’은 남주의 화살에 불타버렸다.
그러나 사라진 게 아니다. 세대간은 물론 지역 간, 계층 간 갈등과 반목 등 변종 ‘괴물’들은 이 땅을 활보하고 있다. 한강변의 호스트는 사라졌지만 라스트신처럼 언제 얼음장을 깨고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우리 모두가 ‘괴물’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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