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도된 경마 장면 ‘볼만’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조동진의 노래 ‘제비꽃’이 흐르는 화면은 노랫말과 꼭 닮았다. 잔잔하고 맑고 소녀적인. 보랏빛 제비꽃 같은 감성이 묻어난다. 주연을 맡은 임수정과도 닮았다.
제주 목장의 산들바람을 품에 안을 듯, 두 팔을 벌려 말을 타는 임수정의 행복한 표정이 영화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 전부다. ‘각설탕’은 국내 최초로 사람과 말의 우정을 소재로 한 영화.
엄마 잃은 소녀 시은은 역시 엄마 잃은 말 천둥이와 남매처럼 정을 나누며 같이 커 간다. 천둥이가 다른 곳으로 팔려가면서 이별을 하지만 2년 뒤, 최고의 기수를 꿈꾸는 시은과 천둥은 재회한다.
다시 만난 시은과 천둥은 레이스에 도전한다. 그러나 ‘각설탕’은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오로지 가족에 집중한다. 천둥은 ‘써머스비’나 ‘드리머’에 나오는 말들처럼 뛰어난 경주마 혈통이 아니다.
그런 천둥이 경주에서 우승한다는 건 기적일 것이다. 영화는 기적에 기대고 기적을 가족의 힘에서 끌어내고자 한다. 피붙이 같은 시은과 천둥의 관계가 결국 기적을 만든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줄거리는 예측 가능한 선에 머문다. “말을 움직이는 건 채찍이 아니라 기수의 마음”이라는 주인공, 출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달리고 싶다고 히힝거리는 천둥이. 착하고 예쁜 이야기, 거기에 멈춘다. 특별한 로맨스도 없다. 순수와 우정을 메시지 삼아 진정성을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찰기 떨어지는 드라마는 아쉽다.
그러나 “에잇”하면서도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은과 나이트클럽 선전용이 된 천둥이 길에서 만나는 장면. “미안해, 알아보지 못해서. 그동안 잊고 지내서 그렇게 사랑했는데, 아직도 많이 사랑하는데 그냥 스쳐갈 뻔해서 정말 미안해.” 시은의 이 말은 천둥에게 보다, 잊고 지내온 어릴 적 내 꿈들, 한때 아끼며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아 미안한 감정이 가슴을 때린다.
덥수룩한 커트머리가 잘 어울리는 임수정은 맑고 씩씩한 시은 역을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핫! 핫!”하는 의성어를 짧고 강단있게 외치며 말을 타는 모습은 역량을 확장한 배우를 만나는 즐거움을 준다. 1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발탁됐다는 천둥이의 연기도 좋다. 분간하긴 힘들지만 실제로는 똑같이 생긴 말 다섯 마리가 천둥이 역을 나눠 연기했다.
영상미학도 빛난다. 온통 초록빛과 흙빛인 제주도의 풍광은 아름답다. 시은이 말과 함께 노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이다. 경마장의 미칠 듯한 속도감은 압권. 카메라를 담고 달리는 특수 트레일러를 이용해 달리는 말에게 1m까지 접근해 촬영했다는 제작진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
그동안 동물영화가 시도조차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각설탕’이 잡아낸 이런 장면들은 빈약한 드라마의 아쉬움을 달래주고도 남는다. 대견하다 못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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