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낄낄대지 말고 내놓고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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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낄낄대지 말고 내놓고 웃자

다세포 소녀(이재용 감독, 김옥빈·박진우 출연)

  • 승인 2006-08-11 00:00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인터넷 만화’ 원작으로 한 판타지
동성애·원조교제 등 금기 뒤집어
편견·통념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선생님, 죄송한데요. 저
오늘 원조교제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습니다.” 여학생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조퇴를 청한다. 선생님은 놀라는 기색이 없다. “그래, 늦진 않았니? 얼른 가봐라”하고 친절하게 등을 떠민다. ‘효녀’라는 칭찬도 곁들인다.

원조교제? 아무리 영화라 해도 학교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그런 불온한 말이 오갈 수 있나? 더욱이 15세 관람가라니. 영상등급위 위원들은 눈에 콩깍지라도 씌웠나?

미안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 영화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원조교제뿐이 아니다. 사도마조히즘, ‘크로스드레서’(이성복장 애호가), 동성애 등 사회적 금기로 여겨지는 것들이 이 학교에선 거리낌없이 통용된다. 이름하여 ‘무쓸모’고등학교.

이 영화를 보려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거나 사회규범을 들먹이는 엄숙주의는 아예 접어두라. 영화 속 10대들은 교복의 제도적 껍데기에 한 순간도 머물지 않는다. 도발적 상상력으로 불려나온 캐릭터들은 기성세대가 넘지 말라고 그어놓은 선들을 ‘밥먹듯’ 넘어다닌다.

‘다세포 소녀’는 불온하고 발칙하다. 줄거리도 없고 전개도 예측불허다. 기승전결 드라마의 틀보다 우발적인 에피소드를 내세워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상상력과 판타지가 교차하는 자유분방한 이야기. 영화적 상상력이 반짝거리는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개성 뚜렷한 캐릭터. 그리고 이들 캐릭터들이 현실을 과장하고 비트는 데 있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인형같이 생긴 ‘가난’을 등에 업고 다닌다. 대부분의 영화에선 가난한 소녀는 가난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살지만, 이 영화에서 가난한 소녀는 궁상 지대로다.

완벽한 꽃미남 안소니. 모든 소녀들의 판타지 대상인 ‘들장미 소녀’의 남자 주인공과 이름도 같다. 스위스에서 전학 온 그는 온갖 잘난 척에 어설픈 영어 단어를 섞어 쓰며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외눈박이와 그의 아름다운 ‘남동생’ 두눈박이. ‘여자들은 왜 흰 팬티를 선호하나’ 등의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은 테리 & 우스 등은 존재만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이들이 학교에서 우정과 삶을 배우면서 동시에 갑자기 모범생이 되어가는 친구들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금기로 여겨졌던 것들을 토해내 가벼운 웃음거리로 비틀고, 귀여운 음담패설로 만들어 버리는 도발적 상황은 꽤나 상쾌하다. 그렇다. 상식과 가식은 손바닥 뒤집기, 종이 한 장 차이다.

이재용 감독은 음습하고 칙칙하게 이미지화한 세계를 건조하게, 심지어 아름답게 탈색시키는 재주를 가졌다. ‘순애보’에서 우인과 아야를 이어주는 인터넷 포르노사이트가 그랬다. ‘다세포 소녀’는 좀 더 노골적이다. 이상야릇한 취향을 비난하거나 의문시하지 않는다. 아버지나 조폭보스 같은 원조교제의 수요자까지도 수용의 대상이 된다.

대전이 낳은 이 감독은 음지의 것들을 모조리 양지로 끌어내기로 작정한 것 같다. 단세포 세상에 향해 하고 싶었던 말도 많았던 모양이다. ‘다세포 소녀’는 그 말들을, 그 것도 한꺼번에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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