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릴 적 요즈음 날씨처럼 무더웠던 한 여름이었다. 의식을 잃은 채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네 삼촌이 잠시 눈을 떠보거나 손가락만이라도 움직여 주었으면 하는 가족들의 염원은 이제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기원하는 처지에 있었다.
사람들이 손부채로 더위를 쫓으며 “아이고 더워”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 동생은 찜통더위를 모르고 있습니다. 더위를 느껴가며 살아가는 것도 행복이랍니다.”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큰 수술을 앞두고도 눈만 껌벅이며 아무 표정 없이 모든 것을 초연한 성자(聖者)처럼 물끄러미 흰 벽을 응시하던 눈망울, 그리고 “형, 나 좀 살려 줘”라고 말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의사선생님을 의지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철저한 무력감.
삶에 대한 애착과 가족들의 간절한 염원도 조물주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는지 이십대 청년이었던 네 삼촌은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짧은 생을 접고 말았다.
이름 모를 산새 울고 들꽃 무심하게 피어나는 공원에 남겨두고 오던 날, 회원증 한 장 들고 되돌아오면서 (가족들)누구하나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섯 나이에 여읜 아버지를 하늘에서 뵙고, 재치 넘치는 해학과 정감어린 웃음을 짓는 아버지의 귀여움을 받으며 오늘도 오붓하게 지내고 있을까?
형제를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는 애통함을 (내 몸을 반으로 나누는 아픔과 같다하여)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 한다지만, 오늘도 가슴에 묻은 막내 생각에 속앓이 하시는 네 할머니의 단장(斷腸)의 회한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느냐.
장마가 끝나고 높게 걸린 흰 구름 사이로 내밀 것 같은 그리운 얼굴 떠올리며 ‘더위를 느끼며 사는 것도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