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의 충청비사]67.해방이전 이야기 上

[안영진의 충청비사]67.해방이전 이야기 上

짓밟힌 국토 위 척박한 민초들 삶

  • 승인 2006-08-03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상투 자르고 우리말 대신 일본어 상용
학생들에 신사참배.동방요배 등 강요

피땀 흘려 일해도 보릿고개 넘기 어려워
탄압 못견뎌 선산마저 버리고 고향 등져



해방 61주년 기념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광복의 달…. 그러나 해방의 역사적 배경과 항일 투쟁사, 36년간의 피압박상황 등 그 방대한 내용을 나열하기엔 한계가 있어 필자의 고향 서산지방 이야기로 좁힌 것은 그것이 그 시대 다른 지방 실정과 크게 다를 바 없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환경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한 소년의 모습에서 찾아보려 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에서처럼 지금은 살기 좋은 땅으로 변해 있으나 80년대까지만 해도 공무원들이 서산 발령이 나면 유형지(流刑地)로 알고 눈물을 흘렸다는 그런 고장이다.

그만큼 후진 곳이라 해서 한때는 ‘알라스카’라 불려왔으나 그렇다 해서 버려진 땅은 아니었다. 전국토가 일제의 탄압을 받던 시절에도 서산, 태안(瑞山, 泰安)만은 인심 좋기로 이름난 농촌이며 갯마을(어촌)이었다.

또 다른 측면에선 내륙지방보다 훨씬 소식이 빠르고 서울, 인천과 직거래를 하다 보니 한발 앞서 신문화와 접하는 고장이기도 했다.

당시 서산 읍에서 동북으로 13km 지점엔 ‘명천포구’가 있고 읍에서 북쪽으로 10km 거리에는 ‘구도’가 나오는데 이 두 포구는 각기 두 척의 정기 연락선이 아침저녁으로 인천을 내왕했다. 그 배는 범선(帆船)이 아닌 기선으로 ‘화륭선’ 또는 ‘똑대기(똑딱선)’라 불렀다.

읍과 ‘명천포구’ 사이엔 성연(聖淵) 면소재지가 있는데 이 장터는 늘 흥청거렸다. 연락선은 ‘시카즈마루(鹿頭丸)’와 ‘하세가와 마루(長谷川丸)’로 승무원들은 해군복장을 하고 있어 갑판원을 ‘세라(Sera)’ 주방장을 ‘곡구(Cook)’라 불렀다. 물론 일본식발음이다. 트럭이나 버스가 보기 힘들 때라 우마차 20여대가 이 코스를 내왕하는 바람에 장터는 늘 붐볐고 그 바람에 ‘먹고 보자 성연장!’이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였다.

30년대
▲ '황도붕기풍어제' 재연
▲ '황도붕기풍어제' 재연
일제는 표면상 문화정책을 펼 때라 그런대로 세상은 굴러가는 듯 했으나 날이 갈수록 마수는 조여들기 시작했다. 주재소엔 순사가 증원되고 보통학교와 우체국이 들어서며 ‘신체제’라 해서 산림간수와 전매서 직원, 금융조합(농협), 척식(拓殖)회사가 등장, 문어발처럼 착취의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상투 자르기(단발령)’, ‘황국신민선서’ 같은 걸 서서히 강요하기 시작했다.


갯마을까지 日문화정책 점령



일본말 상용을 위해 일제는 ‘생활개선-아이우에오(アイウエオ)’라는 묘한 발상을 들고 나와 이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복장은 색깔 있는 것으로’라거나 ‘일상 챙깁시다. 위생문제를’ 하는 식으로 연계시켰다. 보통학교 학생들도 그냥 놔두질 않았으며 ‘조기회’니 ‘달밤회(月夜會)’ 등으로 묶어 ‘신사참배’, ‘동방요배’를 일상처럼 밀어부쳤다.

1937년까지는 ‘조선어독본’이 허용되어 ‘한석봉’과 삼천갑자, ‘동방석’이야기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등의 동요를 가르쳤으나 하루아침에 이를 접고 ‘일본어상용’이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체조시간에는 ‘검도’와 ‘스모(당시는 대마도 씨름이라 했다.)’를 가르치며 ‘기마전’을 필수 종목으로 넣었다. 성연장터에는 일본교장 일가족과 교두 그리고 목공예사와 주재소 주임 등이 살았고 ‘반점’, ‘비단가계’, ‘잡화상’을 운영하는 중국인이 살고 있었다. 이 장터에선 추석명절과 단오절이 되면 씨름대회가 열렸고 때론 활동사진(영화), 신불출의 만담과 유랑극단 ‘이수일과 심순애’, 남사당(男寺?)패가 들어와 흥을 돋웠다.

장터 술집에선 밤늦도록 육자배기, 장타령(각서리), 양산도가락에 작부들의 웃음소리가 거리로 새어나왔다. 주재소 주임, 학교장, 연락선 선장 등 일인들이 모이면 교두의 손풍금 소리와 함께 ‘술이란 눈물인가. 한숨인가?’라는 그들 노래와 때로는 ‘잡소리(雜歌)’까지 부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 나라(奈良)의 대불(법륭사큰부처)이 수음 질하면 나라, 시가지는 정액 투성이, 정액 투성이, 헤이! 헤이 ― 이런 분위기로 몰고 가다 한 번은 싸움판이 벌어졌다.

옆방에서 술을 마시던 조선 교사가 이 노래를 듣다 못해 ‘조선에 와 있는 내지인(內地人)은 몽땅 쌍놈들이다.’고 소리친 게 화근이었다. 주재소주임이 ‘뭐라고 조선 놈 주제에!’라며 선생의 따귀를 때린 일이 있는데 그 후 그 교사는 일인경찰 압력에 의해 이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또 한 번은 일본인 교두(교감)가 늘 굽실거리는 중국인 비단장수에게 ‘짱꼴라, 짱꼴라’, 쿠리(노예)라고 야유했다가 격투를 벌인 일까지 있었다.

교두는 유도가 2단이라며 굽 높은 게다(下?)를 딸각거리며 늘 장터를 누비고 다녔다. 야유에 참다못해 반항하는 중국인의 멱살을 거머쥐고 일본인 교두가 매다꼰졌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중국인이 번개같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공중으로 치솟으며 옆차기로 교두의 턱을 차자 그냥 나뒹군 채 일어나질 못했다. 그 바람에 중국인은 주재소에 끌려가 밤새 모진 매를 맞고서야 풀려
났는데 오늘날 생각해보니 그 솜씨는 소림사(小林寺)의 무술이었던 것 같다.

계(桂)소년(가명)이 사는 갯마을은 그때까지도 표면으로는 조용한 듯했다. 발 빠르게 읍(邑)과 인천(仁川) 그리고 경성(서울)을 내왕하는 사람은 이장이거나 마을 유지 정도였다. 그들은 경성(서울)의 ‘화신상회’, ‘미츠코시(三越)’, ‘조지야(丁子屋)’, ‘창경원’ 구경을 하고 돌아와 화제를 뿌렸다.

그 바람에 경인천(京仁 川) 관광붐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작농’들은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봐야 절반을 지주에게 바치고 구정을 쇠고 나면 절량기를 맞이 했다. ‘춘궁기’니 ‘보릿고개’란 이를 두고 하는 말로 대부분의 농민들은 허기진 산양(山羊)처럼 목을 빼고 나싱개와 푸성귀가 돋아나는 봄을 기다린다.


하투로 하룻밤새 머슴살이 전략

농가에선 겨울철을 맞으면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가마니와 ‘멍석’ 돗자리를 짜는 게 고작인데 다른 쪽에선 노름판이 벌어진다. 기름 메긴 딱지에 그림을 새겨넣은 ‘투전’장을 훑어 내리며 ‘쫄쫄이’니 ‘따라지’ 운운하는 투전판이었다. 나중에 일본에서 ‘화투’라는 게 들어와 하룻밤에 벼 몇 섬을 잃고 나서 이른 봄 대책이 서지 않으면 ‘머슴살이’에 들어가는데 그 연봉(?)은 겨우 쌀 두 가마로 이를 ‘새경’이라고 했다.

윷놀이로 밤을 새우기 일쑤지만 때론 말판을 쓰다가 싸움질이 번지는 일도 있었다. 또 한 번은 짚신을 삼는 머슴 옆에서 주인이 ‘콩쥐팥쥐’ 이야기책을 구슬피 읽는 과정에서 계모의 학대장면에 이르자 “저런, 찢어 죽일 년!”하고 옆에 놓인 창칼로 주인 허벅다리를 찍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나돌았다.

또 윷놀이를 하거나 투전판이 벌어지면 집주인은 ‘동치미’를 양푼에 쭉쭉 쪼개 머슴방에 내놓는데 옆에는 물동이에 바가지를 띄워 놓는다. 밤새 동치미를 먹고 나면 갈증이나 자주 소변을 보기 때문에 문밖에는 으레 큰 오줌통을 대기시켰다. 그 오줌은 훌륭한 거름이 된다. 이는 그 시대의 농경수단이며 정서라 할 수 있다.

지난 세기 30년대 성연 앞바다 갯벌에서는 조개와 굴 ‘능정이’ 정도를 잡아다 간장에 버무렸다가 곰이 삭으면 반찬으로 삼았다. 조수가 빠져나간 갯벌에는 골 망둥이가 철부덕거리며 능정이가 기어 다니고 ’황발이‘라는 게가 빨간 발(가위)을 번쩍 쳐들고 날 새게 숨바꼭질을 했다. 조수가 밀려들면 망둥이 낚시질을 했고 밤이면 아낙네들이 떼 지어 솜방망이와 횃불을 들고 게 잡이에 나서 밤에는 어화(漁火)가 칠흑 같은 밤바다를 밝혔다.


농사.고기잡이로 생계 유지



이와는 달리 태안 ‘안흥’이나 ‘안면도’, ‘황도’에선 중선(큰 배)을 몰고 ‘격렬비열도’와 ‘어청도’ 멀리 ‘연평도’까지 출어, 만선을 이루면 징, 꽹과리를 치며 귀항, 파시(波市)가 열려 꽃게와 조기, 대구, 청어, 도미 등 신선한 어물이 인천과 내륙으로 팔려나갔다. 그 정서는 ‘황도붕기풍어놀이’ 등에 나타나는데 이 놀이는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으로 필자가 충남예총회장을 맡고 있을 때 이야기다.

옛날에는 ‘복쟁이’가 첫 그물에 걸리면 재수가 없다 해서 그물을 걷고 되돌아와 복을 모래사장에 태질을 시켰다는 설이 있다. 그토록 천대받던 ‘복쟁이’가 일인들이 즐기는 바람에 이제는 한국인도 이를 별미로 치고 있다.

그 시대엔 오늘처럼 기상예보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어민들의 해상조난이 자주 일어났다. 태안지방 어촌엘 가보면 제삿날이 같은 경우가 있는데 고기잡이에 나섰다 풍랑을 만나 한날한시에 떼죽음(익사)을 한 탓이다.


만주.일본으로 농민들 대이동



그 무렵 중국 산동 반도와 ‘천진’, ‘청도’ 등지에서 ‘장크(뗏목)’ 배가 서해에 나타나 물물교환을 했으며 ‘격렬비열도’에선 중국본토에서 개 짖는 소리까지 들린다고 했다. 인천에는 산동(山東) 지방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이 집단촌(차이나타운)이 들어섰고 서, 태안(瑞泰安)에도 우동집, 비단점포 등을 차렸다. 빵모자에 손때가 묻어 빤질거리는 입성에 늘 소매 속에 양손을 묻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단 장수의 주판알 튕기는 모습과 우동자락을 때리는 솜씨가 신기해 보였다. 중국여인들이 ‘몽땅발’로 삐딱거리며 걷는 걸 보고 도망칠까봐 발을 졸라매어 그렇게 되었다지만 누군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것이 아니고 발을 졸라매면 성(性)감각을 돋우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30년대 중반부터 농어촌에 불어 닥친 이향(離鄕) 대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언 듯 보기엔 신사조 앞에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수평이동’이라 볼지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일제의 전략에서 비롯한 부작용이었다. 먹고살기 어려워 또는 일제의 감시가 두려워 고향을 뜨는 예가 속출했다. 그 실정을 이태준(李泰俊)은 ‘꽃나무는 심어 놓고’라는 소설로 다룬 바 있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묘사에 불과했다. 이민 길에 오르기 전 집 앞에 심어놓은 꽃나무를 되돌아본다는 내용이지만 실상은 훨씬 심각하고 처절했다.

그때 소년은 신작로를 따라 읍으로 향하는 이민가족을 보았다. 살던 토담집을 되돌라보며 울부짖는 애 엄마에 그저 멍청한 표정으로 “안녕히 들 계시어유…” 인사하는 가장, 배웅하는 마을 사람들 눈에도 이슬이 맺혀 있었다.

누더기 이불 보따리를 젊어진 남편과 봇짐에 ‘밀개떡’을 챙겨들고 통곡하는 어미 뒤를 두 꼬마는 강아지처럼 따라 가고 있었다. 두 꼬마는 새로 삼은 짚신을 신고 있었는데 목적지는 만주 어디라고 했다. 농민 이동은 이에 그치질 않고 ‘부평’의 방직공장과 일본피복 공장으로 떠났다. 이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 무렵 소년은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 공원 폭탄투척사건’, 이웃 고을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당진의 심훈’ 이야기 같은 건 들어본 일이 없다.

필통엔 일장기를 가슴에 단 ‘손기정’의 마라톤 승리 장면이 그려져 있었고 ‘상해’에서 승리한 일본군의 활약상을 포스터를 통해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단군’이니 ‘조선독립’이니 하는 걸 알 까닭이 없었으며 ‘중 ? 일 전쟁’이 일어난 뒤로는 일본이 이겨야 하는 것으로 또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길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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