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축제·전국휘호대회 창설 등 문화발전 이끌어
가수 조영남·탤런트 정준호 등 연예인도 다수 배출
예산군은 호서지방에 위치해 있는 역사 깊은 지역으로 예로부터 고산 또는 오산이라 부른 예산과 금물, 덕풍이라 부른 덕산, 임존성이란 옛 이름을 지닌 대흥이 조선시대에 합쳐져 예산군이 됐다.
내포 지방의 중심지인 예산군은 서부 충남에서 이름난 교통의 요충지로 공주와 아산 당진과 서산, 홍성과 보령, 청양으로 이어지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발달, 이 같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좋은 위치에서 성장해 왔다.
국내 손 꼽히는 충절의 고장인 것은 물론 예산의 문맥(文脈)과 예맥(藝脈)을 빛낸 인물이 많다는 것 또한 예산의 자랑이다.
백제 시대에는 흑치상지, 도침을 들 수 있으며, 추사 김정희 등 많은 문화 예술인이 배출돼 활동을 하고 있다. 또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인 세종 때에 예산에서 호장을 지낸 이성만과 이순 형제가 나눈 형제애를 다룬 이야기 등이 전해지고 있다. <편집자 주>
문향(文鄕)과
예산의 대표적인 소설가 방영웅(66)은 예산읍 신흥동 (현 예산리)에서 출생, 1967년 그가 25세가 되던 해에 ‘분례기’를 ‘창작과 비평사’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데뷔했다. 분례기는 파격적인 언어와 다채로운 묘사, 인습에 대한 저항 의식, 질박한 충청도 사투리와 거칠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지닌 인물 구성 등으로 인해 연재 시작과 동시에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예산 땅을 무대로 삼은 최초의 작품인 ‘분례기’는 발표 당시 문단의 화제를 일으켜서 장기간에 걸쳐 베스트셀러가 됐다. 분례기 이후에 단편 ‘호두껍질’, ‘사무장과 배달원’, ‘꽃놀이’ 등과 장편 ‘말’, ‘억새의 노래’ 등이 있고, 창작집 ‘살아가는 이야기’, ‘첫눈’ 등을 출간했으며 1970년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한국 창작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 성찬경(77)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예산 농고`경복중 교사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장을 역임했다. ‘문학예술’에 시 이열, 궁, 프리즘 등이 추천돼 문단에 데뷔하고 ‘60년대 사화집’의 동인이 된 후 1970년 이후 시낭송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으며,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한국시인협회상(1979)과 한국사학사 작품상(1985), 제 30회 월탄문학상(시집 묵극, 1995), 제 47회 서울시 문화상(문학부문, 1998), 보관문화훈장(2000)등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이재인(62) 경기 대학교 교수는 예산군 광시면 운산리에서 출생한 문인으로서 ‘세계명작의 이해, 1987’ 등 저서 10여 편과 단편소설 ‘금이빨과 금지구역, 1986’, 장편소설 ‘악어새,1989’ 및 소설집 ‘뱀삿골 오디세이, 2005’와 수필집 ‘광야의 아침, 1973’ 등 10여 책, 그리고 창작집 ‘씨앗과 놋요강,1987’등 10여 권을 내놨다.
이종상(69)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예산읍 발연리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8년 동국대학교 비교미학 석사학위 및 동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학과 교수(1991~2003), 예술원 회원(2004~) 등 30여 기관 경력이 있다. 또 제 10회 국전 특선을 시작으로 은관문화훈장 등 약 10회의 상훈과 중등미술(국정교과서)을 집필하는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진자 예산문화원장은 1958년 예산읍 주교리에서 출생해 예산초등, 예산여고를 졸업하고 목원대학교 및 홍익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예산출신의 조각가이다. 충청남도미술대전 조각부문 대상 및 한국 미술협회 이사장상 충청남도 문화예술인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예술 부문에 남다른 면모를 보여 줬으며, 차세대 재능 있는 꿈나무들의 인재양성에 힘쓰는 등 예산지역 후진양성 및 지역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최완수(66) 간송 미술관 연구실장은 1965년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 후 국립박물관에 근무하다가 1966년부터 간송 미술관 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용인대학교 대학원, 연세대학교 사학과에 출강하고 있는 최완수 실장은 ‘추사집(1976)’, ‘김추사 연구초’,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명찰순례 1`2`3(1994)’,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여행(1999)’, ‘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겸재의 한양진경’등의 저서를 냈다.
이상재(77) 임성중학교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사학 임성중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이며, ‘인간 윤봉길연구’,’춘암상사 박인호’,’홍성의사총소고를 저술했다, 천도교를 민족종교로 선양하기 위해 천도교의 제4대 법종인 춘암상사 박인호의 신도비(출생지인 예산군 삽교읍 하포리 소재)를 찬 한바 있으며, 우리나라 유일의 보부상 유품을 모아 놓은 예덕 상무사를 중심으로 보부상 놀이의 보존에 힘쓰고 있다.
윤규상(82) 월진회 회장은 월진회 활동을 통해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3년부터 매년 시행해 온 윤봉길문화축제를 주도하는 한편 예덕상무사의 두령으로서 보부상 유품 전시관과 예덕상무사우의 건립 개관을 주선했다.
윤규상 회장은 윤봉길의사어록탑 건립, 윤봉길의사 흉상 제작 기증 등의 사회사업을 펼치고 특히 윤봉길문화축제를 개발하는 등 업적을 이룩하면서 제 1회 예산군민의상(1989) 수상, 자랑스런 충남 인상 수상(2001), 보훈문화 상 수상(2002)의 영예를 받았다.
예산이 낳은 불세출의 거장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예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이항복(80) 전 예산문화원장. 이 전 원장은 예산문화원장에 재직중인 1990년에 전국 서예백일장을 창안하고 추사 김정희 선생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추사김정희선생추모전국휘호대회’를 창설, 예산 서예의 발전적 계기를 이룩했다.
한상복(46) 한국음악협회 충남지회장은 천안시 음악협회 사무장(1996~1998)과 충남음악협회 사무국장(1999~2005)으로 활동하면서 ‘ 천안음협 15년사’, ‘충남음협 50년사’를 발간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충남도 음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1년에는 충남문화예술인상을, 2004년에는 충남음악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한국 음악인들의 모임인 한국음악협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음악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현재 천안 계광중학교 음악교사로 재직 중이며 2005년에는 한국음악협회 예산군 지부를 창립하며 초대 지부장을 맡고 있다.
문학과 예술분야뿐 아니라 예산 출신의 연예인도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가수 조영남(61)은 예산군 삽교읍 출신으로 1970년 ‘딜라일라’로 가수활동을 시작, 국내 대표적인 가수로 잘 알려져 있다. 조영남은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 ‘내 고향 삽 다리’ 등 많은 역작을 남겼으며, 주요 수상은 1996년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수상, 1999년도에는 한국상록회 본부 선정 제11회 인간 상록수 표장을 받았다.
인기탤런트 최주봉(62)씨는 삽교읍 출신으로 예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탤런트가 된 정통파 연예인이다.
1969년 극단 가교 단원으로 입단, 그 해 ‘퇴비탑의 기적’으로 연극에 데뷔하고 1979년 TBC ‘형사’로 탤런트에 변신했으며 1999년에는 중부대 겸임교수, 2004.1~2006.3 서울시 뮤지컬 단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연극협회 회원으로 한성전문대 공연 영상학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탤런트 겸 영화배우 정준호(36)는 예산군 신양면 시왕리 출신으로 예산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영화인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1995년 MBC 24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돼 드라마 에어포스, 킬리만자로의 표범, 안녕내 사랑 등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영화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 거룩한 계보, 사랑방선수와 어머니 등의 많은 작품에 출연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5년도 제28회 황금 촬영상 연기대상을 수상한 연예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