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진 순천향대 교수 |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논의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드넓은 초원에서 발원한 한줌 몽골 부족이 이와 같은 대제국을 건설하였다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몽골정부는 나담 축제를 종전보다 더욱 성대하게 준비한 것은 물론 몽골제국 800주년을 기념하는 많은 행사를 기획하여 치르고 있다.
필자는 1996년 여름 세미나 참석을 위해 처음 몽골 땅을 밟은 이후, 때로는 학술적 목적으로, 때로는 자매결연 대학 방문을 위해, 또 때로는 태평양아시아협회 청년해외봉사단 단장의 자격으로 몽골을 십 수차례 방문해 왔다.
몽골은 1921년 구소련의 도움을 받아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사회주의국가로 독립한 나라다. 원나라 멸망이후 중국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구소련 적군의 도움을 받아 독립한 것이다.
따라서 1990년 구소련의 붕괴에 따른 개방에 이르기까지, 몽골은 은둔의 국가였으며 제반 사회제도에서 철저하게 소련의 영향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시장개방이후 몽골은 다소의 혼란은 존재하지만, 나름대로 긍정적인 변화와 개혁의 과정을 겪고 있다.
한국과 몽골은 고려시대 이후 약 천년이 지나 다시 1990년 국교정상화를 이룩하게 된다. 이제 양국은 수교 16년이 되었지만 무역과 직접투자, 교육과 민간협력 등 제반 차원에서 상호 중요한 협력국가로 빠르게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양국 대통령이 교차 국빈 방문을 하였으며 많은 주요 인사들이 활발히 내왕하고 있다.
더욱이 양국은 인종 및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촌의 나라’다운 우호와 협력을 과시하고 있다. 수많은 몽골 사람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으며, 대륙의 한가운데 박혀있는 경이로운 나라 몽골에 대한 호기심으로 올 여름에는 하루 네 편의 비행기가 울란바토르를 왕복할 정도로 많은 한국인들이 몽골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도 나는 태평양아시아협회 청년해외봉사단(10개 대학 27명으로 구성된 연합봉사단)을 인솔하는 단장의 자격으로 몽골 과학기술대학에서 3주가 넘도록 활동하고 돌아왔다. 과거에는 우리 봉사단이 집짓기 등 지역사회 노력봉사에 주력하였지만, 최근에는 주로 한국어 교육 및 문화교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하드웨어보다 지식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가 현지 대학생들에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제 몽골에는 한국어를 전공 혹은 부전공으로 가르치는 대학이 12개에 이르고 있으며, 영어 전공에 못지않은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다. 우리 봉사단에게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배운 과학기술대학 한국어 전공 학생들은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참여하고 공부하였다. 장차 이들이 몽골사회를 이끌어갈 미래 역군들이라고 생각할 때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청년 대학생들은 21세기의 주역인 만큼 두 나라 젊은 대학생들 간의 교류가 증가하고 서로 더욱 친해진다면 이는 양국의 향후 상호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양국간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한국에 체류하는 몽골인 불법체류자 문제, 한류 열풍을 좀먹는 몽골 내 어글리 코리안 문제 등은 상호 지혜를 짜내어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주요 현안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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