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비사]66. 5·31 지방선거를 되돌아보며

[충청비사]66. 5·31 지방선거를 되돌아보며

‘空約’ 되지 않도록 책임정치 펼쳐야

  • 승인 2006-07-27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 한나라 ‘싹쓸이’
금품살포 등 불법선거운동 근절안돼 유감
‘살맛나는 대전’ ‘강한 충남’ 신명 다해야



싹쓸이란 민주풍토에선 그리 바람직한 게 못 된다는 데서 그러하다. 국민중심당의 부진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평가가 뒤따르는데 어떻든 일당 독점에 대해 박수를 보낼 일은 아니라고 보는 눈이 적지 않은 듯하다.

우선 대전시 의회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의회란 집행부를 견제하기 위해 존립하는 것인데 일색이란 모양새가 그리 아름다워 보이질 않는다. 여야의 분포는 45대55의 비율이 가장 이상적이라 말하는 이유가 이런데 있다.

그리고 여.야 관계는 주적(主敵)개념이 아니라 상호견제, 조화를 위한 궁극적으로는 한 가닥 합의집행(合意執行)의 위치라 해서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에선 여.야 할 것 없이 ‘이 책임은 전적으로 상대에게’라는 식으로 떠넘기는 걸 흔히 지켜 본 우리들이다. 입으로는 ‘자연권’, ‘자기보존’을 주장한 ‘홈스’를 들먹이고 사회계약설로 유명한 ‘루소’를 내세우면서도 막상 실천에 이르면 망설이는 게 현대인이다.

하지만 초기 민주주의가 시동이 걸릴 무렵에는 지배층에서는 참정권확대를 걱정한 나머지 선거권은 ‘재산과 교양을 지닌 사람’에게만 부여해야 한다고 해서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런저런 과정과 체험을 거쳐 오늘의 민주제도가 정착됐지만 그것이 마지막 보루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든 그것이 200~3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렇다면 우리민족은 그 시대 왕조 앞에 노예처럼 굴종(屈從)의 시공을 살아왔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그것이 조선조 시대였지만 견마(犬馬)처럼 혹사당하며 살아온 것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태동기 우리에게도 그 나름의 조선식 언로(言路)나 정치제도는 있었다. 문헌에도 국민이 중하고(民爲重) 그 다음은 사직차지(社稷次之)이고 왕도 먼지보다 가볍게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군위경(君爲輕)이라는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 제도차이는 있을지언정 체제의 이념은 같은 유사점이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난번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우리는 ‘긍정과 부정’이라는 두 측면을 지켜본 탓에 많은 것을 생각을 해 본 셈이다. 선거의 자유분위기 보장은 되어 있으면서도 부정적인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예를 든다면 허위사실 유포와 사전선거운동, 금품 살포 사례에서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우수(憂愁)에 젖기도 했다.

하기야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구미각국에서도 아직은 이 제도가 완결 아닌 진행형(ing)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남들이 200~300년 전부터 누려온 이 제도를 우리는 겨우 6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데서 그러하다. 지난날엔 공약을 ‘낚싯밥’ 정도로 생각하고 온갖 공약을 남발하는 작태를 수없이 보아온 국민들이었다. 지난 선거 때도 황당한 공약들은 ‘유랑극단’의 가두선전처럼 요란했다는 걸 굳이 숨길 까닭이 없다.

그때 후보들이 내건 공양은 어떠했는가. 그것은 협태산(挾泰山)을 하고 이초북해(而超北海)라도 할 것처럼 떠들어대어 유권자들을 어리둥절케 한 일이 허다했다. 정부차원에서도 해내기 어려운 크나큰 사업, 동북아의 중심, 서해시대의 주역, 한국 제일가는 부자시군을 만들겠다고 사자후한 군상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뜬 구름 잡는 식의 공약과 폭로전에다 폭력이 난무하는 그런 선거도 치른 경험이 있다. 세계의 중심이요, 인류사상 최대 도시라는 도쿄 도지사 선거를 필자는 일찍이 지켜 본 일이 있다.

재선을 노리는 ‘미노베(美濃部)’와 늘 우리 눈에 가시처럼 비춰진 극우파 ‘이사히라(石原愼太郞)’가 대결 했을 때 최대 쟁점이라는 게 ‘종달새논쟁(雀リ論爭)인데 그것은 세계의 주목거리였다. 언 듯 듣기엔 낭만파 시인들의 주제발표 쯤으로 들릴지 모르나 내용을 파고들면 웃기는 논쟁이었다. 환경청 장관을 지낸 소설가 ‘이시하라’가 도쿄의 환경문제를 들고 나오자 능구렁이 같은 원노 ‘미노베’는 이렇게 응수했다.

― 시민 여러분! 도쿄의 맑은 하늘을 보십시오. 지난날엔 태양이 중천에 둥실 떠 있어도 도쿄의 하늘은 매연으로 회색빛이었는데 지금은 종달새가 날아와 지적입니다. 또 도쿄의 젖줄 스미다(隅田)강 상류까지 바닷물고기가 날아와 비늘(銀鱗)을 번쩍이며 유영합니다. 여러분 내말이 거짓입니까?

자신의 치적을 이렇게 우회적인 수사(修辭)로 반격, ‘이시하라’는 그 선거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만한 테크닉은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풍토에서는 아직도 원색적인 ‘물고 늘어지기’ 폭로전 같은 게 활개를 치고 있어 안타깝다.


민주주의란 말잔치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행위’라고 가시 돋친 말을 한 이가 있다. 일종의 자학이지만…. 그러나 아직은 최량, 최선의 제도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정치를 ‘필요악’이라 해서 ‘너무 가까이 하면 화상을 입기 쉽고 너무 떨어져 있으면 동상(凍傷)에 걸린다.’는 잠언(箴言)도 전해온다.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 불신은 극에 달해 때로는 ‘만인이 만인 앞에 이리떼처럼 사나운 표정으로 으르렁대기 일쑤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막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영웅 아니면 반역자’,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싸움으로 정글법칙을 연상시키는 계절이다.

청와대 욕을 해도 잡아가지 않는 자유 시대라 말하면 ‘오죽 무능하면….’ 이런 식으로 맞받는다. 그런가 하면 상대당 최고위원 경선 결과에 대해 ‘개발독재망령’이라는 식의 극단논리가 판을 친다. 오죽 우리 당 인기가 없으면…. 하는 식의 자성 같은 건 아예 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을 지낸 인물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후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자 ‘노벨상도 완전히 타락 했구먼….’ 이런 식이다.

민초들도 이웃과 반목하다가 애경사가 있을 땐 찾아가 인사를 치루는 게 통례인데 내키지 않으면 모른 척 하거나 웬만하면 비서를 시켜 5만 원짜리 난초화분 하나쯤 보내면 인격에 흠집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지도자도 그 지경이다 보니 국민들이 무엇을 본받고 지도자를 따를 것인가를 생각게 한다. 또, 대통령의 지도이념이나 정책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비판하고 대안을 내놓을 것이지 ‘앞으로는 대학출신을 뽑아야 한다.’는 식의 면박 같은 건 점잖은 언행은 아니다.

미국이 자랑하는 ‘링컨’ 대통령과 일본이 내세우는 ‘다나카(田中)’ 수상도 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걸 알고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정치인의 ‘막말’ 풍조 탓인지는 몰라도 시민들 역시 그 어느 시대보다 막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어 언어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다. 교육수준은 세계정상급인데도 언어구사(修辭) 능력은 그 어느 시대보다 불량한 편이어서 ‘놈’, ‘년’하고 양아치들에게서나 통할 법한 낱말들이 난무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정치인은 자신이 한 말엔 책임을 져야 하고 특히 당선자는 공약에 충실해야 한다. 아무리 공약이 찬란(스펙트럼)해도 실적이 없으면 유권자들을 우롱하는 것임으로 결코 있어 안 될 일이다. 무지개를 따라 지중해 해변까지 갔다가 허전하게 되돌아온 ‘나폴레옹’이나 저 산 넘어 아득한 하늘가에 행복이 있다 해서 남을 따라 나섰다가 눈물 글썽글썽 되돌아온 ‘칼풋세’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당선된 지자체장들은 집무를 시작했는데 어느 지자체장은 당선 직후 인사차 각 기관을 순방 중 선거 때의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상대 후보에 대한 이런저런 흠을 늘어놓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속이 뒤집어졌기로서니 승자가 패자를 들먹이는 걸 보고 보기 민망 하더라며 웃는 걸 지켜 본 일이 있다. 우리는 박성호 대전시장의 당선 소감에서 ‘대전을 으뜸가는 과학 도시로 또는 행복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거듭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정치꾼은 오늘에 집착하지만 정치가는 내일을 설계한다.’는 잠언까지 인용하며 지켜봐 달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시민들은 박 시장의 노련한 행정, 경륜에 기대를 건다는 여론 쪽으로 기울었다. 또, 이완구 충남지사는 ‘행정수도’와 도청이전에 진력하며 특히 9개 대공약사업은 신명을 바쳐 지키겠다고 했다.

그리고 도민의 정서와 이익에 반할 때는 정부와 중앙당(한나라)과도 가차 없는 투쟁을 하겠다며 시종 ‘강한 충남’을 역설했다. 주위의 평은 ‘충청인 체질이 아니로군!’이라며 강성이미지에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대전을 살맛나는 도시로’, ‘강한 충남’을 표방하는 두 단체장에게 기대를 걸며 전임자의 업적을 폄하지 않는 쪽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길 당부해두고 싶다. 또 정치인들은 화려한 표방(공약) 같은 걸 즐기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실현, 당성여부가 문제로 남을 뿐이다.

그래서 늘 이상적인 슬로건을 내세우는데 예를 든다면 ‘케네디’의 ‘뉴프론티어’라거나 박정희의 ‘조국근대화’, 다나카 일본 수상의 ‘일본열도개조론’, 비스마르크의 ‘일하라, 일하라’라던가 등소평의 ‘흑묘백묘불사론(黑猫白猫不辭論)’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찬연한 공약이라 하더라도 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 또는 여건이 되는가하는 것을 챙기는 ‘매니페스토(manifesto)운동’까지 펼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만큼 정치적 안목이 발전한 것이다.

새로 뽑은 단체장들이 집무에 들어갔다. 채 한 달도 안됐지만…. 우리들 시민들이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선거 때 공약은 충실하게 지킬 것을 당부해 두려 한다. 선거공약은 실천 가능한 것, 격에 어울리는 것을 내세워야지 일개 군수가 도지사나 정부차원에서도 버거운 것을 내세운다면 그것은 꼴불견에 다름 아니다.

태산을 고르고 북해를 건너뛸 듯이 만용을 부린다거나 턱없이 동북아 중심, 일등 시군(市郡), 부자마을 운운하기에 앞서 잔잔하면서도 실천 가능한 그런 시책 같은 것도 소중한 공약감이 되리라 믿기에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미 빛을 보고 있는 서천의 갯벌사업(미용) 서산, 태안의 ‘쪽마늘’ 전국 보급화, 고흥의 ‘나비축제’, 장수의 ‘개똥불이’산업 같은 것도 개성 있는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공단유치, 고용증대 운운하며 일렬종대로 늘어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거듭 당부해둔다.
▲ ▲  충청권 단체장 취임선서  박성효 대전시장, 이완구 충남도지사, 정우택 충북도지사(왼쪽부터)가 지난 3일 각각 취임식을 갖고 '시장과 도지사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고 있다. /박갑순 기자
▲ ▲ 충청권 단체장 취임선서 박성효 대전시장, 이완구 충남도지사, 정우택 충북도지사(왼쪽부터)가 지난 3일 각각 취임식을 갖고 "시장과 도지사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고 있다. /박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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