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정자 한국무용가 |
몇 년전 아마 2001년 였던 것 같다. 언제나 새로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운전하는 차안에서 였듯이 이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 3월에 눈발이 몹시 뿌렸고 그 옆에 언제 피어 올랐었는지 개나리가 봉긋이 꽃망울을 보이던 날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냥 펑펑 눈물을 쏟았던 것 같다.
사정없이 휘날리는 눈발과 3월이라는 계절과 거기에 봉긋이 머금은 개나리의 꽃망울이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치닫게 하였고 그때, 한편의 작품전개가 그대로 눈앞에서 펼쳐지면서 한걸음에 메모, 춤으로 옮겨진것이 허깨비와의 춤이었던 것이다.
3월에 눈꽃이 피었습니다./ 그 옆에 개나리도 나의 계절이라고/ 봉긋이 꽃잎을 피어 올렸고요./ 왜인지 슬프다 느끼는 날이었습니다./ 가슴저리는 그 환장할 빛바랜 분홍색을 소매자락으로 한 커다란 장삼을 입고/ 서서히 무대 앞으로 등장/ 거기에 짚으로 된 사람 하나 서 있습니다./ 단장한 내가 나의 모습인지 그저 발가벗은채/ 짚의 모양을 한 내가 나의 모습인지/ 그저 함께 춤을 춰야 하는게 인생인가 봅니다./ 어쩐지 슬픈 왈츠가 될 것 같습니다./ 딱히 슬프다 생각 않는데도 말입니다./ 생(生)에 관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눈꽃이 내리던 날에 그 ‘허깨비와의 춤을’은 만들어 졌고 그 해 9월에 아마 11번째 개인전에 올렸던 것 같다. 내안에 내가 있는 건지 내 밖에 내가 있는 건지 아니면 나랑 마주할 그 누구의 나라도 있는 건지 탄식하며 어쩌면 언제나 꿈을, 환상(幻像)을, 환영(幻影)을 부여잡고 -이 부분을 허깨비로 표현- 춤을 추고 있는 게 우리네들 삶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아마 그때 공연관람을 와 주셨던 그 사람의 동료들이 농담으로 여기에서의 허깨비가 그 사람아니냐고 놀렸었나보다.
‘허깨비와의 춤을’은 올해 꽤 큰 수술을 받으며 나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 같다. 수제천곡으로 시작해 탱고 음악으로 맺음 하였던 것을 바하의 무반주 첼로 곡으로 비틀어도 보고, 헐렁한 속옷같은 이미지의 마지막 부분의 의상을 마치 프라다의 깔끔하면서도 정제된 의상으로 바꿔보고-무용에 있어서 음악과 의상이 확 바뀐다는 것은 춤사위 역시 그만큼 큰폭의 바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서 2006년 상반기의 많은 날들을 몸살로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예술에 대해서 문외한이라고 자칭하는 그가 한마디로 어렵단다. 바꾸기 전이 훨씬 쉽게, 충격으로 다가왔었다고.
처음부터 작품이 마음에 안들어서 수술을 감행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2006년도 우수 무대작품 지원사업에 선정돼 나름대로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시도했던 작업이었지만 지금은 처음의 원판에 충실하기로 했다.
춤을 보아주는 많은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칭 예술에 대해서 문외한이라고 하는 우리 그이 같은 분들이고 그분들이 소중한 우리들의 관객 대부분 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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