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같아서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태가 잘 보전된 곳으로 일행을 이끌고 싶었다. 민족의 정기가 서린 그 위엄을 고스란히 간직한 계룡산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지만 지금 계룡산이 처한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장군봉 기슭아래 마음대로 파헤쳐지고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이 올라간 온천지구에서 일행을 만났다. 한참을 내린 비로 운무가 신령스럽게 피어오르는 장군봉에 일행은 탄성을 내질렀지만 그 탄성은 곧 한숨으로 바뀌었다. 기슭 오목한 곳에 깊숙이 들어앉은 자연사박물관과 인근에 삐죽삐죽 올라붙은 모텔들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한숨일 게다.
지구 지정 후 터만 닦아놓은 채 방치된 개발예정지는 잡풀이 우후죽순으로 자라고 있다. 그 사이에 몸을 뒤채는 탁한 흙빛은 현장의 암울함을 더해준다.
온천지구의 개발역사와 시작부터 삐뚤어졌던 자연사박물관의 건립과정들을 소개한 후 일행을 이끌고 계룡대로 향했다. 지금 계룡산 자락은 골프장 개발 계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현장에 도법스님과 그 일행의 생명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도로를 타고 민목재를 넘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선지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막기 위해선지 골프장 둘레엔 나무들이 죽 늘어서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그 안쪽으로 18홀짜리 골프장이 있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도로를 사이에 두고 18홀로 증설이 계획 중인 구룡골프장이 있다.
그곳으로 찾아들어 갔다. 짙게 깔린 운무가 계룡산 자락의 대부분을 감추는가 싶더니 시간이 흐르며 모습을 드러낸다.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기라도 하듯이 서서히 물기를 머금어 더욱 푸르른 모습을 보여준다.
군에서 토지수용을 한 후 그대로 놓아 둔 골프장 증설예정지는 용봉저수지에 흘러내려 두계천으로 들어가는 시냇물이 힘찬 물소리를 내며 일행을 맞았다. 인간의 인위적인 간섭에서 벗어나 제 모습 그대로를 찾아가고 있는 자연의 위대한 힘은 빗줄기 속에서도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계룡산국립공원 경계와 불과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그곳에 또 하나의 녹색사막을 만들려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도법스님 일행과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국도 1호선 공사 현장이다. 많은 논란 끝에 2004년 말 공사가 재개되면서 이제는 가리울 계곡의 본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 인근 갑하산 자락 역시 나들목을 만들기 위한 공사 때문인지 누런 속살을 드러낸 채 쏟아지는 빗줄기를 속절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껍질이 벗겨진 공사현장의 모습은 주변의 푸름을 모두 덮고도 남음이었다. 그 모습이 더욱 처연하다.
“정부는 개발의 수요만을 예측하지 억제정책은 생각하질 않아요. 정치인들에게 그 같은 노력을 기대할 수는 없어요. 종교인들과 지식인들이 나서야 해요.”
늘어나는 교통 수요만을 생각해 그에 맞는 도로정책을 생산할 뿐 합리적인 대중교통 체계 구축을 통한 승용차 이용 억제 등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 현실에 대한 도법스님의 아픈 진단이다.
계룡산의 훼손현장을 안내하고 나면 항상 갖는 씁쓸함을 애써 떨쳐내며 사무실에 들어와 신문을 펼친다. 국립공원 계곡물 수질 검사에 대한 기사가 한 조각 실려 있다. 전국 15개 국립공원의 97개 주요지점을 측정한 결과 57개 지점이 총대장균군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탐방객들이 찾고 사유지 면적이 넓은 계룡산도 다르지 않았다. 계룡산의 경우 2곳이 오염되었고 그중 한 곳은 오염이 가장 심한 3등급으로 판명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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