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의 계약’과 진정한 중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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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의 계약’과 진정한 중재자

<사이언스 칼럼>

  • 승인 2006-07-18 00:00
  • 한필수 한국원자력연구소 방사성폐기물연구부장한필수 한국원자력연구소 방사성폐기물연구부장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19세기 초 유럽 대륙을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된 이래 인류는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를 생활 속에 실용화하면서 그 혜택을 누리고 살아왔다. 하지만 에너지 대량 소비의 여러가지 후유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여 년 전부터의 일이다.

산업화 과정의 이면에는 신만이 알고 있을 법한 ‘파우스트의 계약’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즉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을 수 없는 계약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 지구촌의 환경을 보자.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이상기후의 출현 등 각종 부작용들이 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쌓여만가고 있다. 석유로 대변되는 화석연료는 눈부신 산업 발전과 생활 수준 향상을 가져왔지만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에너지 사용 구조에서 석유가 고갈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다.

화석연료에 비해 오염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아 청정 에너지라고 일컬어지는 원자력도 파우스트의 계약에서 완전히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원자력 발전을 시작, 현재 20기의 원전이 전체 전력 생산량의 40% 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화석 연료에 대한 과다한 의존에서 탈피하고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을 가능케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원자력 발전 도입 초기 원자력이 던져준 숙제에 대해 상당 기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바로 고준위 폐기물의 장기 안전 관리 문제다.

우리나라가 고준위 폐기물의 장기 안전 관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97년부터로 선진국보다 20~30년이 늦었다. 때문에 선진국들도 한발 늦게 현재 지하처분 연구시설을 활용한 현장 연구로 진입하는 단계에 있다.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지 내에 건설중인 지하처분 연구시설은 향후 국민적 합의하에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이 건설될 경우에 대비해 한국형 처분 시스템에 대한 현장 시험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시험 시설이라지만 지하 암반의 구조적 특성과 균열 특성, 이에 따른 지하수의 유동 등을 연구하는 시설로 고준위 폐기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또한 연구 목적상 방사성 물질은 사용할 계획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 시설로 허가를 받아 방사성 물질을 사용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부 언론은 지하처분 연구시설에 고준위 폐기물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행히 해당 시설에 대한 현장 설명회를 통해 의혹이 근거 없음이 밝혀졌지만 많은 아쉬움과 함께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사회가 고도화할수록 여러 방면에서 돌출하게 될 갖가지 문제들은 그것을 직접 해결하는 기술적 전문가 집단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일반 대중들에게 그 내용을 올바로 전달해 주고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중재자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재자는 특정 전문 분야에 대해 기술적인 방법론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사회가 바라는 합목적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 사이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 전체를 보고 부분을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일반인들이 파우스트의 계약을 충분히 인식하도록 계도자 역할을 하고, 또 합의에 이르는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중재자 역할도 하는 ‘비전문가적인 전문가’의 역할이 앞으로는 더욱 더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사회 여러 부문에서 국민적인 합의점 도출을 위해 언론이나 방송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중재자의 역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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