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경수 충남대 법대학장 |
우리 헌법이 비록 9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한계가 노출된 이상 우리 정치의 틀을 바로 잡으려는 개헌이 논의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 다만 대통령선거를 불과 17개월여 남겨놓은 시점에서 촉발되는 개헌 논의는 자칫 당리당략에 치우칠 위험이 있기에 이를 뒤로 미루자는 신중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국정의 효율성이 저하됨은 물론 민주적 대표성과 책임성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그러한 신중론을 제치고 다시 개헌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리하여 관훈클럽과 한국정치학회, 대화아카데미가 개헌을 주제로 잇따라 모임을 개최한 바 있다.
1980년 및 1987년의 개헌논의와 달리 이제는 민주대 반민주란 이념논쟁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남북통일과 맞물려있는 총강부분은 심사숙고가 요구되지만, 당장 국정의 효율적 운영이나 국민통합과 직결되는 시급성을 띤 과제는 아니라고 본다면, 결국 개헌논의의 초점은 역시 권력구조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즉 현행 대통령제를 어떻게, 무엇으로 보완.대치하느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라스키(H. Laski)의 지적대로 미국 대통령은 군주제의 국왕에게 부여된 역할과 내각제의 총리가 맡은 역할을 함께 수행해야 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초당적 역할과 여야 정당간의 대결에서 여당을 지휘하는 역할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통령제도 이와 비슷한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가원수로서 초당적 자세를 강조하다 보면 정당과 연계된 민주적 대표성과 책임성이 약해지고, 반면 다수당의 총수로서 야당과 부닥치다 보면 국민통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이러한 딜레마를 풀기위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이 고려될 수 있지만 46년 전 장면정권의 쓰라린 경험이 내각제보다는 대통령제가 정치적 안정을 담보한다는 환상을 고착시킴으로써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게 우리의 개헌논의가 지닌 한계일지도 모른다. 정당의 무책임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책임 있는 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의회중심주의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인 게 우리의 국민정서이다.
최근 우리사회는 이념의 양극화가 사회분열을 가져오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정치적 경쟁과 정책 논쟁의 수준을 넘어 사회의 균열과 갈등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사실에 대한 해석이 극단으로 갈리고 국가정체성까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념의 대립이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헌법개정논의에 있어서까지 순수한 대통령제와 순수한 의원내각제식의 이념형에 얽매여 양극화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의 개헌논의가 이념적, 정서적, 정치적 차원의 논의였다면 이제부터는 현실적이고 분석적인 실사구시적인 접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통일을 대비하고 지역구도 철폐와 날치기예방을 위한 양원제의 도입이라든지, 부통령제의 도입,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겸직금지, 일부 경제조항의 손질과 같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형태에 관한 개헌 논의는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총강부분과 함께 최소한에 그쳐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그 때에 대폭 손질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되어있는 것을 바로잡는 원 포인트 개헌, 실현가능한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개헌을 추진해야만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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