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 메시지에 재미 되레 반감
단순히 “재미있니?”라고 묻
그러나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메시지가 너무 위험하고 투박하다. ‘생각없이’ 보기엔 관객들이 이미 너무 많은 걸 알고들 있으니, 그게 문제다.
남북을 잇는 경의선 개통식 날, 일본은 을사늑약을 근거로 경의선 철도가 자신들의 소유임을 주장한다. 사학자 최민재(조재현)는 “문서에 찍힌 국새는 가짜다”라고 주장하고, 고종이 숨겨둔 진짜 국새를 찾으면 일본의 억지주장을 뒤엎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력시위까지 벌이는 일본에 강하게 맞서던 대통령(안성기)이 최민재를 지원하는 사이, 대일관계 경색을 우려한 총리(문성근)는 국새 소동을 막으려 한다. 총리는 국정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을 시켜 방해를 명한다.
경의선 철도처럼 영화는 정해진 궤도 위를 쾌속 질주한다. 오른쪽엔 민족주의라는, 왼쪽엔 반일감정이란 레일을 나란히 놓는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을 번갈아 오가는 에피소드는 침목으로 깔았다. 승객(관객)의 목적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반도호 열차는 오로지 ‘민족 자긍심’ 역을 향해 블록버스터급 속도로 돌진해 간다.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정부종합청사 폭파신과 한일간 해상 전투신, 고증을 바탕으로 꼼꼼히 재현한 대한제국의 궁궐과 그 곳에서 벌어지는 명성황후 시해 장면 등. 실감 영상으로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드는 꽤 공들인 장면들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거슬리는 건 기적소리가 너무 잦고, 크게 울린다는 점. 배우들은 한결같이 치켜뜬 눈에 핏발을 세우고 시사 다큐 프로그램의 MC처럼 한 단어씩 힘주어 씹어뱉듯 대사를 처리한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와 대통령은 각각 카메라를 노려본 채 정면 클로즈업으로 비장하게 대사를 토해낸다.
필터 없이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직접 호소하길 원하는 이런 직설적 화법을 듣다보면 왜 ‘2시간27분짜리 역사 강의’라는 악평을 듣는지 깨닫게 된다. 직설화법이 반복되는 탓에 극적 긴장감도 잃어버렸다.
대통령과 총리와의 대립, 최민재와 이상현의 대결 등 굴곡 구간을 흥미롭게 지나던 열차는 구간이 끝날 때 쯤 갑자기 힘을 잃는다. 최민재를 죽일 것 처럼 대하던 이상현이 최의 설득에 한순간에 신념을 바꾸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애국=선’이고, 그 길을 가는 것이니 무조건 “따라와∼”하고 따라가야 하는 건가.
강우석 감독은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나라 사람 치고 ‘한국이 일본을 물리치는’ 이야기에 가슴 뛰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만약 이 영화가 관객의 호응을 얻는다면 이 지점일 것이다. 또 강 감독이 아니라면 애국주의에 이토록 과감히 상업적으로 맹동하는 영화를 만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말하는 태도다. 어깨에 힘을 꽉 주고, 눈 부릅뜨고 큰 소리로 하는 이야기는 듣기 거북하다. 오히려 꼭 그래야 했는지도 의문이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