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선 공주대 교수 |
기웃거림의 궁극적인 목적을 안정과 편안함에 두고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일들을 겪게 되니 이제는 오히려 변화무쌍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과 함께 하는 것이 편안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재미로 여기게 될 쯤 이면 흔히 말하듯이 도를 터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아직 초연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달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세상의 일들이 신경과 감각을 곧추세우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주는 여성주간이었다. 지방선거가 끝 난지 한 달여 지난 시점에서 여성의 삶과 여성주간이 어떤 의미 있는 관계로 설명될 수 있을지, 여성주간 행사의 성격을 보아도 유의미함을 찾아볼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내심 여성들이 모여 큰 소리로 지방여성의 삶을 바꾸어 낼 역적모의나 실컷 한다면 후련함이라도 있으련만, 정부가 준 이슈가 있으니 행사를 돈 들여 치르는 지방자치단체야 그냥 행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
견고한 나리들께서 방자한 노름을 보아주겠는가. 몇몇의 열 많은 여성들이 한쪽 구석에서 힘들게 소리 지르는 것쯤으로 여기며 때로는 여유 있게 이유나 들어보자며 내미는 손을 마다하지 못한 채 그렇게 4년이 가는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오랜 시간 여성을 되 내이고 다니며 눈총을 받아 왔지만 결과를 보면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총리가 여성이고 여성장관이 있고 흔히 여성의 시대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무신경함도 이제는 참기 어려우니 도가 트기는 멀었음이 확실하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사회 구석구석에서 여성이 여성성을 가지고 차별받지 않는 날이 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시장에 내몰리면서도 그나마 일자리 경쟁이 불붙고 사무실에 앉아 책상에 쌓인 먼지로 인해 걸레를 먼저 잡아야 하나 고민하고, 아이들의 문제를 다른 가족보다 먼저 인지하고 해결하지 못함을 추궁당하거나 자책하는 여성이 있는 한 여성의 시대라 동의 할 수 있겠는가?
그냥 한번 딴지를 걸고자 함이 아니다. 아직도 사회지도층인사들이 여성이 잘사는 사회를 설명할 때 어머니와 아내와 딸에게 잘하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고 여성의 행복을 집안을 잘 가꾸는 것으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한 여성의 문제는 여전히 사적영역에 머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성의 문제를 지독한 가족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시키는 힘든 과정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면 그들이 공적영역에서 장담하는 여성정책은 실체를 갖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통해 각 당의 여성비례대표들이 광역과 기초의회에 진출했고 일부 지역구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유감스럽게도 여성의 대표성을 인정받아 여성할당의 몫을 챙겼지만 스스로 검증받을 기회를 포기한 사람도 있다.
반면 어떤 여성 후보들은 정당의 각축장으로부터 자의로 또는 타의로 독립하면서 다수 유권자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지방정치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여성의원들의 임무가 매우 무거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정을 돌보듯 의정활동 하기를 거부하고 철저히 공적영역의 모든 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 보되 공적인 작동기전을 통해 하기를 권한다. 선거과정에서 보여주지 못한 잠재적 능력을 충분히 보여 주어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우려를 보기 좋게 씻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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