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진 선수 |
김세진은 7일 소속 구단 측과 협의를 통해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삼성화재는 이 과정에서 그 동안 팀 훈련에 참가하지 않았던 김세진에게 팀에 복귀하도록 설득했으나 본인이 선수생활을 접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고 밝혔다.
김세진은 그 동안 구단 측에 “더 이상 뛰고 싶은 욕심도 없다”며 “지인의 건축 사업을 돕겠다”며 사업가로의 변신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세진의 공식 은퇴식은 오는 12월 25일로 예정된 ‘06-07 V리그’ 대전 홈 개막전에 앞서 진행될 계획이다.
한편 삼성화재는 지난 1월 ‘마판증후군’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오른 박재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선수생활이 곤란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은퇴를 결정하기로 했다.
김세진 되돌아본 12년 선수생활
부상 악재 딛고 4차례 MVP
패기만만한 백전노장도 대자연의 법칙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또 한 명의 스타가 선수로서의 작별을 고했다.
7일 공식 은퇴를 선언한 김세진(32)은 95년 창단 멤버로 삼성화재에 입단했다. 모교인 충북 옥천공고와 한양대에서도 그의 실력은 이미 입증된 상태였다.
입단 당시 수많은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닐 정도로 배구인구몰이에 앞장섰던 김세진은 지난 94년과 95년 월드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월드스타’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기량을 꽃피웠다.
주전 라이트로 활약한 그는 2년 뒤 ‘97 한국배구 슈퍼리그’를 시작으로 ‘2004년 V-투어’까지 모두 4차례의 MVP를 휩쓸었다. 이로 인해 ‘김세진=우승’이란 새로운 경기공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체력소모가 극심한 배구 선수들에게 고비는 항상 뒤따르는 법.
당시 무릎과 발목, 허리 등 부상으로 여러 차례 수술대 위에 올랐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강한 승부근성이 그를 오뚝이 처럼 일으켜 세웠다.
특히 태극마크를 달았던 2001년과 2002년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 제패에 이어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남자배구를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앞서 지난 1992년 3월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이듬해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의 감격을 맛봤고, 1994년 월드리그에서는 197㎝의 큰 키를 이용해 타점 높은 호쾌한 스파이크 쇼를 펼쳐 최우수 공격상을 받으며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다.
또 1995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과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과 2000시드니올림픽 본선 진출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세진은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배구 선수로 성공했듯이 사업가로서도 꼭 성공 하겠다”는 은퇴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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