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내용 모두 밋밋
영화 ‘아파트’의 원작은 2
밤 9시56분. 아파트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이를 눈치챈 세진(고소영)은 주민들에게 알리지만 누구 하나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세진은 홀로 사는 유연(장희진)을 알게 되고, 유연의 거실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기 시작한다.
현대인에게 가장 일반적인 집의 형태가 된 아파트. 대문을 마주하고도 이웃의 얼굴도 모르는 현실과 가장 친숙한 사람이 공포스런 존재가 되는 살벌한 이미지가 화면을 채운다.
‘아파트’가 관심을 끄는 건 안병기라는 이름 때문이다. ‘가위’ ‘폰’ ‘분신사바’ 등 공포영화를 고집하며 한국형 귀신 영화 모델을 만든 감독. 우리 공포영화가 여름 시즌용 장르로 자리잡게 된 것도 그의 공로다. 안병기는 그동안 구축했던 귀신 이야기를 ‘아파트’에서 다 털어놓는다. 자신이 일군 한국형 공포를 집대성하고 정수를 정리하겠다는 야심이 묻어 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는 발목이 잡힌다. 공포는 인간 내면의 숨겨진 감정을 촘촘히 잡아내 개연성 있는 드라마로 만들 때 가장 증폭된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가장 알고 있을 감독이 뜻밖에 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오히려 가장 섬뜩한 장면은 무심한 표정으로 베란다로 걸어나와 느닷없이 뛰어내리는 남자다. 그런 현대적 삶의 무표정한 섬뜩함에 집중했더라면 ‘아파트’는 새로운 공포영화로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소영은 극 전체를 혼자 이끌고 가기엔 버겁다는 느낌이 들고, 살해되는 이들이 왜 죽어야 하는 지 이유도 분명치 않아 생뚱맞다. 다만 몸의 절반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명암을 표현해낸 장희진의 발굴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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