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나, 타투, 컬러문신, 스티커 문신 등 유행하는 문신도 많다. 문신은 영구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일정기간 지나면 없어지는 문신이 등장한 것도 인기요인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헤나’는 열대성 관목인 ‘로소니아 이너미스’의 잎을 따서 말린 다음 가루로 만든 염색제다. 문신을 할 경우 피부에 어두운 갈색으로 물들며 서유럽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헤나가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문신의 유행에는 대중
바로 얼마전 탤런트 조인성은 영화촬영을 위해 거액을 들여 가슴에서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초대형 용(龍)문신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축구스타 베컴은 ‘문신중독증’으로 알려져 있다.
‘진공청소기’란 별명을 갖고 있는 축구선수 김남일도 양쪽 눈썹에 미용문신을 한 것으로 밝혀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여성의 눈썹 문신은 낯설지 않지만 남성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러나 일본 젊은 남성들은 눈썹을 깎거나 뽑아서 정리하거나 문신을 새기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더욱 뚜렷해 보이는 효과 때문이다.
국내에서 미용문신은 문신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선 퍼머넌트메이크업 또는 퍼머넌트코스메틱, 즉 ‘영구화장’이란 이름으로 통용된다. 영구화장은 한번 관리받으면 평생을 지니고 산다는 의미로 문신과 맥락을 같이한다. 스포츠를 즐기거나 화장을 할 여유가 없는 사람 등이 즐겨 찾고 있다.
문신의 본래 뜻은 피부에 상처를 낸 다음 그 부위에 색소를 넣어 글씨, 그림, 무늬 등을 새기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한번 새기면 영구적일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헤라 등을 문신으로 표기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렇다면 문신은 언제 등장했을 까. 문신의 풍습은 이미 원시시대부터 있었다. 기원전 2000년경 만들어진 이집트의 미라에도 문신이 남아있고 일본의 경우 기원전 5000년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 얼굴에 문신이 새겨진 점토인형이 발굴된 바 있다.
초기의 문신은 주술적, 종교적 의미가 컸다. 이밖에도 장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 것도 있었고 계급을 나타내고 액땜을 위한 것, 또 결혼이나 출산 때 호적대신에 행하는 것도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호랑이나 들짐승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삼한시대 때부터 문신이 사용돼 왔다. 비슷한 사례로 남태평양 부근의 섬 주민들은 허벅지 등에 상어문신을 새김으로써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문신은 일종의 형벌로 행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전과자의 팔뚝에 도둑 도(盜)자를 새기게 했고 일부 노비의 팔뚝과 얼굴에도 문신을 새김으로써 도망가는 것을 막기도 했다. 700년경 일본에서도 반란을 꾀한 자는 문신형을 선고해 한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가족을 포함해 모두로부터 배척당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와서 장식용 문신이 널리 유행하면서 죄인들까지 형벌로 새긴 문신위에 장식 무늬를 덮어 새기자 문신형은 더 이상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유명해지면서 각국의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 관광코스에서 자주 만날수 있는 이 마오리족은 지위가 높을수록 얼굴에 정교하고 빈틈없는 문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월남전에서 이름을 떨친 맹호부대와 청룡부대, 십자성부대 등은 그 이름만큼이나 문신이 유명했다.
지금의 문신은 젊은이들의 개성연출이나 패션의 소품으로 사용되는 등 개인의 개성에 따라 시술되고 있다. 문신은 점점 악세사리의 개념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신시술을 둘러싸고 돌출하는 문제점도 남아있다. 무자격자 불법시술과 부실 재료 유통 등이 그것이다.
자칫하면 몸에 후유증을 낳을 수 있어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래도 유행의 대세는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미용문신의 세계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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