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건양대 석좌교수 |
식구들도 닮았다. 좀처럼 밖으로 나돌지 않는다. 이곳에 산지도 어언 5년이 되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는 그 명승지에도 간다 간다 하면서 가지 않았다. 휴일 나들이가 있다면 애경사 참석 후 즉시 귀가가 전부다. 여름이 되면 더 게을러진다. 방학 동안에 2학기 강의안을 다듬어야 한다.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힘들여 외국에 주문해서 산 책들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언제 할 거냐고 묻는다. 그래도 하기 싫다. 겨울방학은 다르다. 날마다 십 여 쪽을 써 나간다. 두 세 번 고쳐 쓰기도 한다. 제대로 된 교재를 만들려고 한다. 아주 열심이다. 여름엔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한 해의 반이 지났으니 이제 좀 쉬라는 신호다. 빨리 그걸 하라 한다. 휴가다. 상반기 6개월 잘 살아 왔다. 하반기 6개월도 잘 살아 내고 싶다. 그러러면 일과 생활로 지친 심신을 달래달라 한다. 휴가를 가야 한다. 휴가 하니까 생각 난다. 이 세상에 있는 참 기묘한 휴가다. 실연한 사람을 위한 휴가가 떠오른다. 진기하다. 바겐 반나절 휴가도 있다.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다. 이웃 일본의 경우다.
‘실연 휴가’는 이름 그대로다. 실연한 직원을 쉬게 하는 휴가다. 실연을 하게 되면 마음과 몸이 곤죽이 된다. 운다. 울게 되면 눈이 붓는다.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된다. 이 상태로는 출근하고 싶지 않다. 설사 회사에 나간다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상사나 동료가 봐도 안쓰럽기만 하다. 조금 원기를 회복한 다음에 나왔으면 한다. 그쪽이 오히려 회사 분위기나 능률에 도움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실연의 상처는 깊다. 복원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대 전반은 하루를 쉬게 한다. 20대 후반은 이틀이다. 30대 이상은 사흘이다. 연령에 비례하는 상처의 깊이에 대한 배려다. 섬세하다. 바겐 반나절 휴가도 재미있다. 백화점 같은 데서 정기적으로 바겐 세일을 한다. 이때 휴가를 갈 수 있게 한다. 평소에 사고 싶었던 명품을 사게 하려는 목적이다.
할인행사를 할 때는 그 누구보다 먼저 가야 한다. 봐 두었던 명품을 값 싸게 손에 넣으려면 개점하기 무섭게 매장으로 달려 가야 한다. 조금만 늦어도 소용 없다. 벌써 다른 사람이 쥐고 있다. 할 수 없이 몰래 갔다 온다. 딴 핑계 대고 반나절 외출을 신청하기도 한다. 회사로 돌아 와서는 옷장 속에 숨겨 둔다. 내 놓고 자랑할 수가 없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렇게 하지 못 한다. 그럴 바에야 당당하게 다녀 오게 하는 게 낫다. 바겐 반나절 휴가를 제도화 하는 게 득이라는 판단이다. 꿈 속에서 조차 갖고 싶었던 그 명품. 동료들에게 전리품으로 내 보이며 자랑한다. 선점경쟁을 벌인 무용담도 곁들여서 말이다. 기를 살리는 명품휴가다.
여름이다. 휴가를 가자. 돈 많이 드는 여행만이 휴가가 아니다. 오순도순 단란하게 물가에서 놀고 쉬고 하는 휴가가 좋다. 집 걱정? 도둑 들까 봐? 동네 파출소나 지구대에 부탁하면 된다. 휴가 가니까 빈 집 좀 잘 봐 주세요 하면 된다. 방범력과 검거율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우리 경찰이다.
1000원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은 100만원으로도 살 수 없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도 없다. 또 팔지도 않는다. 만드는 행복이다. 마음만으로도 행복을 만들어 주는 휴가를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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