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5·31선거에서 후보의 이미지와 정당의 분위기가 선택의 기준으로 크게 작용했다. 일년 전 당원연수회를 통해 “우리 당은 이미지만 있고, 실체가 없다”고 자체 진단을 했던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에서 시장후보 선정에 이미지를 앞세웠다가 이열치열 식으로 맞대응한 상대당의 이미지 전략에 지고 말았다. 이는 스스로 부당하고 불리한 게임의 법칙을 내세웠다가 선거의 진정한 의미만 훼손한 채 도리어 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 바람에 지역 일꾼을 뽑는 기준이 이미지인 양 변질 되고 말았다. 내용 없고, 콘텐츠 없는 이미지. 이 이미지가 지자체 발전에 어떤 조화를 부릴는지 지켜 볼 일이다.
이번 선거에도 분위기(바람)가 큰 몫을 했다. 분칠만 한 이미지가 자질과 능력, 정책의 허실을 가리는 엄폐물이 되었다면, 분위기는 아예 은폐물이 되어 분별의 빛을 앗아갔다. 후보자들은 선거에서 당락의 60%를 좌우하는 첫째가 정당인데, 이 당은 철학이나 이념, 정책이 아니라, 바람에 따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이미지, 느낌에 따라 움직이는 분위기. 우리는 이 이미지와 분위기의 힘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미국의 청바지 문화가 우리나라로 넘어와서는 멀쩡한 청바지를 훼손하여 입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오래 입어 닳은 것(실용성)을 단순한 멋(허영심)으로 바꿔 찢어 입는 것이다. 정신은 달아나고 겉멋만 빌려 쓴 것이다. 기업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수립하는 CI(corporate identity)가 있다.
이것 역시 미국에서 비롯되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정체성과 이미지를 구축하는 핵심요체인 이념과 실행전략은 빠지고 껍데기 뿐인 비주얼만 부각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멋 부리기’, ‘따라 하기’가 속빈 강정이 된 것이다.
선거와 정치가 상업논리를 벤치마킹하는 세상이다. 물건을 팔기 위해 분위기를 부풀리고 사행심을 조장한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 조목조목 그 유용성을 따지고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멋있으니 사고, 누가 샀으니 산다는 식이다. 이런 소비문화를 염려하기는커녕, 정치는 오히려 이를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 국민들은 또 어떤가. 마치 쇼핑 하듯 선거를 하고 정책을 논한다. 반품도 어렵고 환불도 어려운 선거를 쇼핑하듯 하는 것이다.
따지고 살펴보지 않는 세상에 휘둘리고 있다. 도토리 키 재기가 아니고, 도나 개가 아니데, 그 정당이 그 정당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식이다. 그리고 이를 가리는 주된 기준이 이미지요, 분위기인 것이다.
어느 시인은 일찍이 ‘알맹이는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친 바 있으나, 우리는 껍데기의 멋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알맹이를 돌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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