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살리는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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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살리는 말, 말, 말

<교육단상>

  • 승인 2006-06-28 00:00
  • 최은희 교사(아산 거산초)최은희 교사(아산 거산초)
직장을 다녀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저녁 밥상을 차리기 귀찮으면 나는 가끔(아니 종종) 식구들과 밥을 사먹으러 간다. 우리가 밥을 먹으러 가는 곳은 대부분 겉모습도 허름하고 앉을 곳도 변변치 않아 오그작오그작 사람이 붐빈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우아하게 밥을 먹는 것보다는 왁자한 사람들 소리와 땀냄새가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흔한말로 내 사람됨이 촌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밥집에서 밥을 먹고 나올 때 나는 아이들 앞에서 일부러 큰소리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가 하는 시늉을 내며 인사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아이가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차릴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 인사 끝에 매달려 꾸벅 인사를 하고 나온 아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우리가 돈 내고 사 먹었는데 왜 고맙다고 그래?”“고마우니까.” “공짜로 준 것도 아닌데 뭐가 고마워?”“우진아, 엄마는 돈을 내도 음식은 만드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 만들고 차려주는 주기 때문에 고마운 생각이 들어.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돈만 벌려는 마음보다는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사람을 생각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않을까 싶거든.

만약 돈을 냈으니 음식을 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면 오늘 우리가 먹은 순대국밥이 그냥 3500원짜리로 보이지. 그런데 주인이 우리 식구를 위해 이렇게 더운데도 뜨거운 불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을 하면 3500원과 맞바꾼 음식이라기보다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린 귀한 밥이라는 생각이 더 크거든. 그래서 엄마는 고마워. 진짜 마음으로.”

앞서서 겅중겅중 뛰어가는 아이의 뒤꼭지에 대고 나는 장황하게 말을 하였다. 그건 무엇에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점점 줄어드는 각박한 내게 다짐을 하는 것이기도 했으며, 내 아이들이 바른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간절함이기도 했다.

내게 3500원짜리 순대국밥을 먹여준 손길에 고개 숙여 하는 말은 결국 나를 살리는 말이며, 국밥집 아줌마를 살리는 말이다. 말하는 나는 기쁘고, 인사를 받는 아줌마는 국밥 한 그릇 말아 주는 일에 대한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테니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많은 말 가운데 나와 상대를 살리는 상생(相生)의 말을 얼마나 쓰며 사는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 때문에 괴롭고 힘들 때가 얼마나 많은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무심히 뱉어낸 말 때문에, 곁에 있는 동료나 식구에게 한 말이 자꾸 떠올라 밤새 뒤척이지 않는가? 다른 사람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모자란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나는 말한다.

공부 시작할 때마다 아이들이 내게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러면 “열심히 가르치겠습니다.” 고개 숙여 공손하고 바른 자세로 인사한다. 아이들과 내가 서로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을 담아 말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서로 서로를 살게 하는 마음을 배우고 가르치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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