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열흘 뒤에 경기도지사에 취임하는 당선자의 주장은 그다지 생소한 논리는 아니고 늘 듣던 말의 연장이지만 지방사람들 귀엔 대포동 미사일처럼 위협적이다. 진의가 무엇이건 수도권의 결속과 이익만 챙기려는 파괴주의적 언사로 들린다. 그만큼 서울과 경기와 인천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자는 대수도론은 지방을 세계화 시대의 시장기능에 역행하는 발전축으로 보는 시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 발화자(發話者)가 바로 행정수도를 천도라며, 행정도시를 수도 분할이라며 맨 앞줄에서 반대했던 국회의원 출신인 탓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대도시 체계를 이룬 베이징권, 상하이권, 도쿄권과 맞상대할 대안으로 대수도론을 생각했을 수 있다. 런던이나 토론토에 도시관리협의체가 결성되어 광역 생활권 소속 자치단체들이 머리 조아리는 모습이 좋아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
또 경기도지사는 자신을 뽑아준 1000만 경기도민의 뜻만 받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도지사를 하려면 세계화, 분권화, 정보화, 다양화, 환경친화라는 부동의 행정철학과 금도(襟度)쯤은 갖춰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광역시장과 도지사는 굳이 옛 주나라 관직 이미지를 빌려 하관사마(夏官司馬)에나 해당된다. 춘관종백(春官宗伯), 하관사마(夏官司馬), 추관사구(秋官司寇), 동관사공(冬官司空) 중 여름과 같은 일을 하는 직책인 것이다.
여름이 만물을 무성하게 자라게 하듯이 모든 지역을 평등하고 바르게 키우는 ‘사마’의 역할이 요즘 필법으로 국가균형발전이다. 그렇다면 수도권에 필요한 것이 도시계획적 통제방식으로서의 대도시 성장관리 시책이라면 몰라도 서울-중심, 지방-주변이라는 전반적 종속구조를 심화시킬 뿐인 규제 완화나 대수도론은 아니다. 지금 할 일이 감당할 수 없도록 커진 수도권을 집권과 집중적 발전으로 무한정 키울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방자치 4기의 출발선에 선 지금은 중앙집권이 한국의 수도권 집중을 초래한다는 그레고리 헨더슨의 명제를 뒤집을 시기다. 이 이상 수도권을 혼잡과 오염과 토지 부족 등 과밀의 폐해에 시달리게 하거나 지방을 정체와 침체에 시달리게 할 수는 없다. 분권과 분산과 분업은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다. 역대 정권의 수도권 과밀 해소가 번번이 삐딱선을 탄 것은 지역균형발전정책이란 것이 고작해야 산업과 경제정책의 보조수단이었던 데 있었다.
바꿔 말해 수도권 집중 흐름의 물꼬를 지방에 돌려 연속적 지방분산을 발생시키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우리가 행정도시를 옹호하는 것도 지역균형발전정책의 위상이 공간정책에서 국가발전 선도정책으로 격상된 때문이다. 지방을 죽이고 수도권의 지배적 지위를 공고히 할 뿐인 대수도론은 당위를 망각하고 현실을 무시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각 지역이 보유한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 전체 경쟁력의 파이를 키워야 진정한 국가경쟁력이다. 이 땅엔 수도권 2300만 주민만이 아닌 비수도권 2400만 지방 주민도 공생한다.
대수도론은 자기 영역 표시를 위해 특정한 냄새를 피우는 동물의 오줌과 같고 더 비유컨대 담벼락을 청결히 할 실리와 낙서를 금할 명분을 잃어버린 ‘낙서금지’ 낙서와도 같다. 지방권력을 사실상 독점한 한나라당은 이 일로 딜레마에 빠지지 말기를 미리 충고하며, 수도권 당선자들에게는 도착적 순환 논리 같은 대수도론을 거둬들이라고 정중히 권고한다. 동시에 엄중한 경고다. 갈 길은 아직 먼데 대선 때 보자는 목소리부터 삐져나와서야 되겠는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