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에도, 이른 아침부터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로 집을 나서니, 집 사람은 현충일 행사 때문인지 알면서도, 또 휴일 반납이라고 한 마디 한다.
현충원으로 가는 길이 혼잡할까봐 8시에 출발 했지만, 유성부터 벌써 정체가 시작되고 있었고, 길 옆에서는 대목을 보려는지 참배객들에게 팔기 위한 꽃들을 가득 쌓아놓은 사람들도 있었다.
9시를 넘어서는 근 두 시간가량 차량들이 서 있다시피 하였다니, 올해도 선열들을 추모하려는 후손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월드컵의 열기 때문인지 현충일을 맞는 경건함이 덜한 것 같고, 또 일부 가정에서는 현충일 하루 내거는 태극기도 걸지 않고 그나마 조기(弔旗)가 아닌 깃봉까지 올려 단 것도 있는 것을 보니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든다.
낡은 자가용에 태극기를 꽂고 행사장에 왔던 어느 노신사의 모습이 더욱 외롭게 느껴졌던 것도 그 때문일까?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영화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의 무게까지 21그램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태어난 기억까지 잊는 것이 세월의 힘이라고 하지만,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기록이며, 그 발자취를 후세에 전하는 일 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선열들의 피로써 써온 역사 자체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라를 걱정하는 다수의 목소리가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판가름에 묻혀 버리는 이상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바친 부모를 두었기 때문에 손자까지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어느 보훈가족의 말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왜 우리는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지혜를 갖지 못하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안위와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 분들이 무덤에서 나와 나라를 잃은 질곡(桎梏)의 세월이 어떠했는지, 그 원인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들려주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역사는 기록이기에 앞서 후세를 이어가는 교훈 이어야 한다.
역사 앞에 오만한 민족에게 역사는 같은 시련과 아픔을 주어왔다. 우리에게도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악명 높았던 유대인 수용소를 아직도 보전하면서 과거를 반성하고, 또 미래를 위한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 또한 과거를 부끄러운 오욕(汚辱)의 역사로 재단하기에 앞서, 내일을 비추는 나침판으로 삼아야 한다.
며칠 전에는 젊은 조종사 2명이 훈련 중에 순직하는 일이 있었다. 아빠의 영정 앞에 천진난만한 얼굴로 거수경례를 붙이는 아이에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는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의 정신을 기리고, 그 가족들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기에 앞서, 모두가 함께 나눠야할 할 큰 짐이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3만6천여 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주는 무언(無言)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사들의 묘역을 가득 채운 가족들의 눈물, 그리고 그 눈물만큼이나 시린 흰 국화 꽃송이들, 그 꽃말은 다름 아닌 ‘진실’이라고 한다.
역사의 진실 앞에서 모두가 나라사랑의 정신을 활짝 꽃피우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이 되길 기대해 본다.
더불어 우리 태극전사들의 ‘끝나지 않는 신화, 하나 되는 대한민국’의 영광이 계속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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