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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노을씨가 청양 대덕산자락에 있는 여우골산삼농장에서 자신이 직접 재배하고 있는 산삼을 캐내어 보여주고 있다. |
산삼을 재배하는 사람 명노을씨
30대 공직 접고 청양 정착
산자락 수억원어치 씨 뿌려
대량재배 통해 대중화 목표
벌써 8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깊은 산 속에 ‘꼭꼭’ 숨어있는 산삼을 찾아다녔던 명노을(43)씨. 충남에서도 최대 오지로 꼽히는 청양군 정산면 대덕산 자락에 정착한 때만 해도 그는 ‘팔팔한’ 30대였다.
그는 공무원이었다. 청양군의 경제관련 부서에서 유통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그에게 공직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형식과 절차 등이 중요한 공직사회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그에게 단조롭기만 했다. 그런 그의 삶에 산삼이란 존재가 다가왔다. 벌써 20여년전의 일이다.
명씨는 청양 최대의 갑부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대덕산 자락 10만평에 달하는 산삼밭, 여우골산삼농장(www.esansam.co.kr)이 있다. 처음 씨를 뿌린지 7년이 지났다. 1kg에 300만원이상의 고가인 씨를 지난해까지 60kg이나 뿌렸다. 애초부터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관리 때문이었다. 대부분 이 정도 투자하면 ‘도둑 맞을까’ 눈에 불을 켜고 지키지만 명씨는 그러지 않았다. 명씨는 “간혹 일부 등산객들이 ‘슬쩍’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사심이 생기는 만큼 내가 꿈꿔온 산삼의 대중화는 멀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를 따라 산을 올랐다. 그 흔한 산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산을 오를 때마다 그에게 길을 인도하는 건 막대기 하나 뿐이다. 길을 만들어 놓으면 그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산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산이 가파르다. 산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면 오를 마음이 쉽사리 생기지 않을 정도다. 오른지 10여분도 되지 않았는데 온 몸에 땀이 흐른다. 오직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조차 돌아보지 않았지만 이미 지나온 곳이 모두 산삼으로 가득찼다는 걸 그의 말을 듣고 알았다.
그의 손이 한 곳을 가리켰다. 단 한 번도 자세히 보지 않았던지라 곳곳에 자라있는 온갖 종류의 식물들과 구분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산삼이란다. 가까이 가서 유심히 보니 잎사귀 중간에 솟은 줄기에 꽉찬 열매가 보였다. 허리를 편 순간 더 놀랐다. 발 밑을 시작으로 주변이 모두 산삼으로 가득찬, 듣기만 했던 산삼밭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산삼재배는 쉬우면서도 어렵다는게 그의 말이다. 아무렇게나 뿌려도 뿌리를 쉽게 내려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없다. 밭에서 인위적으로 자라는 인삼과 달리 말 그대로 산에서 자연과 함께 자라는 것이 바로 산양산삼이다.
하지만 환경에 따라 성장속도와 품질이 다르다. 햇빛이 비치거나 건조한 곳에서는 잘 자라지도 않거니와 자라도 부실하다는 것이다. 심마니들이 음지만을 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꿈은 산삼에 씌워진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산삼을 대중화시키는 것이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이른바 ‘백년 묵은 산삼’ 등은 확대 포장됐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산삼은 더 이상 신비의 약초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화를 통해 청양을 산삼생산의 메카로 만드는게 청양을 떠나지 않는 그의 목표다.
명씨는 “언젠가는 산삼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며 “인위적인 것과 달리 자연에서 자란 산삼을 대량재배하면 가격이 낮아져 쉽게 구할 수 있어 대중화는 멀지 않다”고 말했다.
산삼을 찾는 사람 박윤덕씨
가는곳 마다 찾는데 일가견
난치병 환자들에 선뜻 선물
“가격 올리기 상술 없어져야”
‘산삼 찾아 삼만리’, 단 한번도 산삼 구경을 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 반면 가는 곳마다 산삼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박윤덕(49)씨는 후자의 경우다. 신기할 정도다. 그만큼 산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부터 산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년 역사의 ‘산반난우리’라는 모임이 계기가 됐다. 난(蘭)을 캐러 갔다가 우연히 산삼을 발견한 후 난보다는 산삼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산삼을 발견했던 지난 94년,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진단다. 몇 명의 지인들과 배낭을 매고 떠났던 물안계곡, 머리는 온갖 잎으로 뒤덮였고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로 수시간을 찾아 헤맸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칠대로 지친 그에게 어두컴컴한 나무 밑에서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열매가 잔뜩 맺힌 산삼, 마치 갓난아기의 어여쁜 손이 생각났단다. 그 때의 흥분이 지금, 산삼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요즘도 산반난우리 회원들과 함께 매월 7∼8번은 산을 오른다. 주말과 휴일을 거의 산에서 보낸다는 말이다. 산삼을 찾기 위해서다. 전북 진안을 비롯해 충북 괴산, 경북 풍기 등 산삼이 있을만한 곳중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제는 모임이름을 바꿔야 할 만큼 산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산찾사’ 경력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찾아낸 산삼만해도 헤아릴 수 없다. 험난한 산을 오르며 간신히 산삼을 발견하고 캐올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어렵사리 캐온 만큼 그는 산삼을 소중한 곳에서 쓰기도 했다. 백혈병 환자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다. 지인들중 누군가가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힘들게 손에 넣은 산삼을 선뜻 내줄만큼 그의 마음에는 따뜻함이 있다. 당시 그 산삼을 약으로 쓴 환자가 지금은 몸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단다.
하지만 여전히 산삼을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산삼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산삼을 캐면 ‘일확천금’을 버는 것처럼 소문을 내며 자신이 캐낸 산삼의 값을 올리는게 이들의 속성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씨는 보기 드문 심마니다.
박씨는 “산삼은 아픈 사람에게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며 “필요한 사람에게 줘야하는데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가 캐는 산삼의 수백배에 달하는 씨를 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젠가 산삼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다른 나눔의 삶인 것이다.
박씨에게는 또 다른 하고픈 일이 있다. 바로 산삼에 대한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다. 온갖 설(說)이 산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보다 학술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씨는 “산삼에 대한 제대로된 연구가 없다보니 상술에 휘둘리는 것”이라며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수많은 오해들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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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덕씨는 난을 캐러갔다가 우연히 산삼을 발견한뒤 산삼의 매력에 빠져 매달 7~8번 산을 찾는다. 사진은 박윤덕씨가 캔 산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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