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검사들은 전장에 뛰어든 장수들처럼 그들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몰아붙였고, 심지어는 모욕까지 주었으니 말이다.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로 상징되는 그날의 대화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행정부의 외청인 검찰 사이에 커다란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확인해 주는 자리로 만족해야 했다.
강금실 법무장관의 임명이 검사들의 집단 반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판사와 민변의 부회장을 역임한 40대 여성인 강금실 장관을 임명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에 대해 검사들이 코드인사를 통해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반발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검찰이 지키고자 하는 이 가치는 법률에 의하여 탄생하고 운영되는 검찰의 존재의의 그 자체니 말이다. 더군다나, 과거 YS, DJ 정권하에서 권력과 일부 정치 검사들이 밀착하여 수사의 공정성을 잃은 것을 경험한 검사들로서는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의 반발 중에 조금은 생각해볼 대목이 있어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인에게 문민의 덧칠을 하지 마라’는 식의 격문이 검찰 내부의 통신망에 올랐다고 하는데, 이는 과연 타당한 말인가?
검사는 무인인가? 실제 과거의 경험으로 본다면, 많은 검사들이 한때 무인을 자처하기도 했던 것 같다. 호방하고 쾌도난마의 모습을 한 검사가 으뜸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여기에 폭탄주 십여잔까지 곁들이는 실력이면 조화만만이었다. 그러나, 검사는 무인이 아니다. 우선 그들에게는 권총과 같은 무기가 주어지지 않고, 구속이라는 강제처분권은 판사도 갖는 권한이며, 세상의 부정과 맞서 싸우는 것은 그들만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를 거쳐 프랑스 혁명후 탄생한 근대 프랑스 형사소송법은 검사제도를 탄생시켰다. 중세 봉건시대에 군주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은 판사는 수사와 재판을 독점하였다. 독점은 남용과 폐해를 낳는다. 저 무시무시한 중세의 마녀재판으로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에서 50만명이 사법살인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노파나 하층 중년 여인들이었다.
이러한 규문(糾問)주의 형사법체계를 무너뜨려 판사와 변호사를 감독하고, 법의 수호자로서의 기능을 맡기기 위하여 등장한 것이 곧 검사였다. 당연히 검사는 시민의 보호자였고, 적법절차의 준수자였다. 검사제도의 정착은 근대 시민의 인권 보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럼에도 검사들이 무인이란 말인가 ?
오늘날 무언가 변화되어 가는 검사의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목격하게 된다. 법정에서 눈을 부릅뜨고 피고인에게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으로 호령하던 검사가 아니라 차분히 논리적으로 피고인을 신문하는 검사의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이런 검사의 모습에 하나 더 얹어 주기를 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고뇌하는 철인으로서의 모습이다. 단순히 수사와 소추기관으로서의 검사가 아니라 일국의 법무행정의 중추를 담당하는 현실에서 시민들의 삶에 대한, 국가의 운영에 대한 진지하고 세련된 고뇌를 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기술의 연마만으로 갖추기는 어렵다. 인문교양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함께 깊은 사고 속에서 매사 신중하고 절제된 언행만이 가능케한다. 그러한 검사들을 많이 갖는 국가의 국민들은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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