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 7, 21)고 말씀하셨다.
행동하는 신앙인에 대해 성 야고보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보 2, 14-17)
우리가 신앙의 은총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 6)이신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고 기뻐할지라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바로 이런 사람이라면 ? 하느님을 안다고 주장하지만 행동으로는 그분을 부정 (티토 1, 16)하는 신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다. 대전 대사동 본당에 있을 때 혼인성사를 받은 신랑을 나는 영 잊을 수가 없다. 세무서에 다니는 괴정동 본당 신자였는데 대사동 본당의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어 혼배 문서를 작성하면서, 어떻게 입교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직장에서 본받아야 할 분으로 다섯 사람이 떠오르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신앙인이었다는 것이다. 네 사람은 가톨릭 신자였고 한 사람은 개신교 신자였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즉시 성당에 찾아가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이 신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직장에서의 신앙인의 좋은 표양, 믿음에 행동이 따르는 실천하는 신앙이었다. 그 당시 괴정동 본당 신부님(유영소 신부)께 연락을 해서 신랑에 대해 알아보니, 모범 청년이라면서 출장중에라도 예비자 교리강의에 꼭 참석하여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현재 국세청 과장으로 재직 중).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그 어디에서나 자기의 생활에 성실하다면, 그러면서 신자로서의 좋은 표양을 보여주는 신앙인의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런 신자야말로 평신도 사도직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신앙인으로서 많은 예비자를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마태오 28, 20),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범인 백인대장과 같은(마태오 8, 5-13) 굳은 믿음으로,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보여주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권고하시며(마태오 5, 16),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보 1, 22)라고 하신다.
현대는 물신사상(物神思想)이 풍미하는 세상이요,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흐려진 불신시대인 것 같다. 한 마디로 신앙인으로 올바로 살아가기엔 어려운 혼탁한 시대다. 이런 어려운 때 일수록 우리 크리스천이 앞장서서 행동으로 좋은 표양을 보여줄 때, 이 사회는 밝고 명랑하게 발전하여 정의가 깃드는 빛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반대로 우리 크리스천이 부정.불의와 야합하거나 태도가 분명치 않아 미지근하다면(묵시록 3, 15-16), 세상 사람들은 가톨릭 교회에 기대는 커녕 오히려 점점 멀어져만 갈 것이다.
진정 우리는 우리와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참으로 하느님께서 여러분 가운데에 계십니다”(Ⅰ코린토 14, 25)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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