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5.31 투표함의 뚜껑을 열고 보니 정말 희한하고도 믿기 어려운 통계가 쏟아져 나와 진짜 웃겼다. 이건 만화다. 정치소설을 쓴다 해도 웬만한 담력을 갖지 않고는 이번 선거결과와 비슷한 이야기는 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거대여당이 박살난 것이다. ‘이나라는 불의가 승리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역사’라며 자기들만이 역사의 적자이며 개혁의 상징이며 무오류라고 자랑하던 열린우리당, 그래서 박정희를 난도질하고 80%, 20% 로 국민을 편갈라 분열시키던 여당이다.
선거결과가 나오자 청와대의 첫 번째 반응은 “민심 흐름의 변화를 알았다”며 그래서 ‘국민의 뜻을 국정에 반영하겠다’가 아니라 ‘아직까지 해오던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였다. 마치 청개구리같은 오기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더욱 무섭고 소름 끼치는 것은 3일 노대통령 발언이다. “선거 한 두번 졌다고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 아니다. 옳은 주장을 해도 그 주체가 선거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발언으로 열린우리당이 뒤집혀지고 국민의 걱정은 쌓여만 간다.
선거 한 두번은 매우 중요하다. 선거 한 두번으로 이나라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 빨치산출신 비전향 장기수가 민주유공자가 되고 백주에 불법 시위를 진압하러간 경찰관이 미군철수를 외치는 단골 시위꾼들에게 얻어 터지는 나라가 됐다.
오죽 답답했던지 열린우리당 김부겸의원은 이날 그의 홈페이지에 “잘못하면 이정권이 얼치기 좌파정권의 몰락이라고 역사에 기록될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썼다. 천심으로 읽어야할 민심을 살폈으면서 순전히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1515년 중종은 과거 시험에서 공자는 누가 자기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맡긴다면 3년이면 정치적 이상을 성취한다고 말했는데 과연 공자가 3년 이내에 그의 말대로 정치적 이상을 성취했는지 대답하라고 문제를 냈다.
조광조가 대답했다. “나라의 법도와 기강을 세우는 원리는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데 있다. 모든 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다. 근본을 바로잡는 일이 우회적인 것 같지만 호력을 쉽게 얻고 말단에 매달리는 게 중요한 것 같지만 성과 거두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조광조는 이어 “그래서 정치원리를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근본에 속한 일과 말단에 속한 일을 구별한 후 먼저 근본을 바로잡는다. 근본이 바르면 말단을 다스리는 문제는 걱정 할 것도 없다”고 대답한다. 그 시대의 근본이라면 도(道)의 실현이요 도란 성리학의 진리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근본은 무엇인가. 헌법이다. 헌법 1, 2조에는 국호는 대한민국 나라형태는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있다. 오늘의 이혼돈은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정치 세력 때문이다. 선거가 중요하지 않다면 헌법을 폐지하고 전제정치로 회귀하잔 말인가.
아니면 탱크 몰고 한강다리를 넘어 총칼로 입헌정부를 타도하여 또 쿠데타를 일으키자는 말인가. 선거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큰길이며 왼쪽으로 쏠린 이념노선에 경종을 울려주는 제전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의 참된 뜻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는 매우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 느끼고 듣는 사람들이 해박한 지식에 외경심을 품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그는 말을 막한다. 무슨말인지 모르고 말했기 때문에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밥술이나 먹게 됐다. 우리는 주린 배를 찬물로 채우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일구어 열매를 따먹고 있다. 그런 나라가 좌익의 쓰나미 앞에서 풍전등화처럼 떨고 있다. 근본으로 돌아가자. 헌법으로 가자. 근본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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