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의 충청비사] 59. 인도의 시성 ‘타고르’

[안영진의 충청비사] 59. 인도의 시성 ‘타고르’

‘동방의 등불’ 한국찬가 민족혼 일깨워

  • 승인 2006-06-08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타고르하우스 전경에 세워진 타고르 동상
▲타고르하우스 전경에 세워진 타고르 동상
삼국시대 불교·한국전쟁 파병 등 인도와 깊은인연
1920년 동아일보 기고… 日帝 한국민에 큰 감동
20세기 최고 예술·사상가로 1913년 노벨문학상
시공초월 작품세계 만해·소월 등 한국문단 영향


요즘 매스컴에선 인도(India) 이야기를 자주 다루고 있다. 중국이 공룡으로 변신해 가는 와중에 그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는 게 인도라는 것이다. 지난날엔 인도하면 열대의 땅, 못사는 나라, 게으른 국민, 거기에 벌거숭이[裸身] 천국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왔지만 오늘에 와선 그와 같은 편견은 아예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11억 인구를 지닌 인도대륙이 기지개를 켜며 21세기 아시아의 크나큰 축(軸)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이 나라는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로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대국이다.

인도는 오래전에 ‘원폭’을 개발한 나라로 현재 첨단 공업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지난 1960년대 선진국들이 ‘대륙이 밝아온다’며 베이징(北京)행 티켓을 놓고 경쟁을 벌였으나 이제는 ‘인도 행 열차’가 붐빈다. 미국, 일본, EU, 모두가 앞을 다투며 인도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렇듯 ‘아시아 중심’의 시대를 맞아 인도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 한국과 인도는 어떤 사이인가.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는 아픈 상처로 얼룩져 있지만 인도와는 단 한 번도 갈등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원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고마움(受惠)을 간직한 탓에 우호, 우정을 지녀온 그런 사이였다.

첫째는 우리에게 불교를 전수한 나라로 백제, 신라, 고구려의 승려들이 그곳에 유학, 교류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신라의 ‘혜초’, 백제의 승려 들이 유학한 흔적이 그대로 전해온다. 그 다음은 우리의 건국 시 성원을 보냈고(네루총리), 6·25전쟁 때는 비동맹 ‘리더’로서 한국전에 파병까지 한 우방이었다. 또 있다. 우리가 일제식민치하에서 신음할 때 시성, ‘타고르’는 ‘아시아의 등불’이라는 시를 써서 동아일보에 게재(揭載), 우리민족을 격려했다.

필자는 1994년, 한 달간 인도에 건너가 그 나라의 이모저모를 취재, 8개월간 연재한 일이 있다. 그 행적은 다음과 같다. ① 불교성지답사 ② 테레사 수녀와의 회견 ③ 영국 식민착취의 본산 ‘동인도주식회사’ ④ ‘무저항주의’의 영웅, 간디 ⑤ 시성 ‘타고르’의 생애 등을 추적한 바 있다. 이 중 ‘타고르’ 이야기는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 이야기를 단면으로나마 소개한다.

‘타고르’ 사상은 梵我如一



타고르는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저서를 내놓았다. 문학, 종교, 철학 등등…. 타고난 정력을 바탕으로 80평생 그렇게 활약하다 타계한 불멸의 예술가였다. 그리고 천수(天壽)를 누렸지만 그의 죽음은 종언(終焉) 아닌 영생(永生)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작품과 사상은 그래서 오늘에까지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유파(流派)와 구분, 유행과 상관없이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작품들로 해서 인류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다.

그것은 사람답게 살아가야할 길잡이요, 등불인 동시에 지침(指針)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그의 저서엔 타작(馱作)이라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심오한 철학과 사상, 인본(人本) 및 섭리에 기조를 두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시와 소설, 희곡 등 주로 문학 분야의 것이 주류를 이루지만 어떻든 그는 20세기 최대의 예술가요, 사상가인 동시에 철인이었다.

그의 저서 ‘인격(人格)의 세계(世界)’에선 그와 같은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 위대한 님은 하나이다. ‘삶’과 ‘죽음’, ‘통일’, ‘이분(離分)’이 모든 것은 브라만(梵天)의 연주일 뿐이다. ― 라고.

세계의 위대한 님은 스스로 연출하며 또 스스로 연주(演奏)를 한다. 그 생명, 그 악기(樂器)는 우리의 마음이며 이에 의해 창조의 노래를 연주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나라는 실체(存在)는 이 세상에 짐짓 머물다가는 타인(他人)일 수 없으며 가숙(假宿)하는 나그네는 더더욱 아니라는 뜻이다. 이 세속은 나와 결합 지어진 ‘동일체’라고 파악한다.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 구절들이다.

그는 영원한 것, 그리고 ‘합일체’를 추구하다보니 형이상(形而上)의 세계가 자칫 니힐(nihil-허무)을 자초하기 쉽다는데서 실존(實存) 세속까지도 등한시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범아여일(梵我如一)의 세계, 그것을 말한다.

같은 동양권에서도 성선설(性善說)과 상반되는 성악설(性惡說) 등으로 해서 갈등을 빚었던 역사적 발자취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종교만 놓고 따져 봐도 그러하다. 한민족은 고구려~고려시대까지 불교를 국교(國敎)로 삼아오다 조선조에 이르러 유학(儒學)을 받아들이며 배불(排佛)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수백 년간 유학에 치우치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개화문명(서구문화)을 접하며 성급하게 이에 편승한 셈이었다. 이는 무비판적인 접목이며 수용이라는 평을 받았다. 시대사조나 ‘이즘’은 물보라와 같은 것이어서 때론 본질이나 의식(意識)세계까지를 뒤바꿔 놓는 우(愚)를 범하기 일쑤였다.

그런 경우 수구(守舊)와 개혁세력이 맞부딪히며 갈등을 빚기 십상인데 진리와 본질은 어디까지나 하나라고 했다. 하나의 진리를 놓고 인류는 여러 각도에서 그것을 해부, 인양(引揚)하려 몸부림을 쳐왔다. 때론 떼소경(群盲)이 코끼리를 평하는 식으로 단면만 훑어보고 전체를 본 것처럼 떠들어대는 경우를 흔히 보아왔다.

코끼리는 어디까지나 코끼리요, 그 나름의 특성을 지닌 동물로서 그것은 바람벽이 아니며 구렁이이거나 기둥일 순 없다. 이에 근거한다면 유물사관(唯物史觀) 역시 절대치가 아닐뿐더러 사상(思想)이나 인본(人本)을 ‘노동가치’나 과학의 잣대만으로 재단하려다 부작용을 가져왔다. 이미 그와 같은 유물론의 실험은 끝난 지 오래다.

인간을 단백질(고깃덩어리)과 물질(骨格), 그리고 수분(水分)의 ‘합성체’라 단정한다면 그것은 독단이며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인간에 관한한 저울이나 잣대, 기계로 측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비스런 영성(靈性)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하는 갈대’라 이르듯이 인간은 사유사색(思惟思索)하는 기능과 특성 같은 걸 갖는다. 타고르는 당시 유물사관이 범람, 레닌이 혁명을 일으킨 그 시대를 살면서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사조요, 단면일 뿐 이분법(二分法)에 불과하다고 간파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타고르’는 인체의 복부에 장치된 가로막(橫隔膜)과 같은 존재로 의연하게 한 시대를 살다간 시성(詩聖)이었다. 서양의 과학문명과 동양의 정신사상을 배격하는 일 없이 모두를 긍정, 합일시키려 노력한 인물이라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선 20세기 동양 최대의 ‘거목’이라 할 수 있다.

동양 최대의 巨木



필자는 소년기에 타고르의 시집 ‘초승달’을 일상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다. 문호의 작품세계를 해부한다거나 감히 평할만한 그런 계제가 아니었음에도 ‘문학하는 학생’이라 해서 남들이 한 번 더 쳐다보는 바람에 괜히 들떠 있었던 시절 이야기다. 그때를 떠올리며 타고르의 생가를 찾아간 감회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 것인가.

소년기,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문학작품을 무작정 읽어댔다. 편모(偏母)가 어렵사리 마련해주신 수업료는 시집, 소설책을 사는데 모두 써 버린 추억. 그 바람에 늘 수업료 체납자 1호였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푸스킨’, ‘바이론’, ‘하이네’, ‘휘트먼’, 콜키의 ‘밤주막’ 등을 마구 접했다. 그 때 타고르는 이미 우리 땅에 깊숙이 자리매김하고 있을 때였다.

‘타고르’이야기는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17년 ‘아시아의 등불’로 한민족과 이미 끈끈한 정을 맺고 있던 ‘타고르’, 그러함에도 우리는 인도를 먼 나라, 인연이 없는 나라쯤으로 여겨왔다. 이에 대한 복원(復元)은 서둘러야 마땅하며 역사정리 또한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줄곧 우리는 중국과 일본 등 ‘3각 구도’라는 틀에서 헤어나질 못했으나 이 점만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불교성지가 인도라는 것과 ‘혜초’와의 관계, 1920년대 타고르의 성원,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 ‘네루’의 애정 어린 지지 등을 고려해 볼 때 결코 먼 나라 일 수 없다는 점이다.

멀지만 가까운 나라 ‘인도’

문명의 물줄기란 본질적으로 발상지(發祥地)에서 그냥 주저앉는 법이 없다. 정체(停滯)하길 거리는 속성 탓에 출분벽(出奔癖)을 지녔다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바람 끼’를 뜻한다. 삼국시대는 불교를 통해 인도와 만났으며 그 다음은 타고르에 의해 이를 복원(復元)한 셈이다.

그의 시 ‘아시아의 등불’이 소개된 것은 1928년 4월 2일 ‘동아일보’에 게재되면서 재회(再會)한다. 이 땅에 그 이름이 소개된 것은 한 발 앞선 1916년으로 그가 노벨상을 받은 지 3년 뒤의 일이다. ‘세계적인 대시인’, ‘철인’, ‘종교가’, ‘타고르 선생’과 접근한 인물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도쿄유학생이라고도 했다. 이것도 캐내야 할 숙제다.

다음해인 1917년 ‘진문학’에 의해 인도의 세계적인 시인 ‘타고르’가 우리 앞에 얼굴을 드러냈고 그의 대표작 ‘기탄자리’, ‘원정’, ‘시월’ 등 일부가 김억(金岸曙)에 의해 소개된 것은 1923년으로 나와 있다. 타고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건 충남출신 ‘만해(韓龍雲)’와 ‘소월(金素月)’, ‘상화(李相和)’라고 문단에선 말한다.

소월의 ‘진달래꽃’이나 만해의 ‘님의 沈默’은 ‘타고르’와 닮은 데가 많다는 평들이다. 시집 ‘초승달’은 ‘임학수’가 해방 후에 펴냈고 ‘타고르전집’은 ‘유령(柳玲)’에 의해 ‘기탄자리’와 희곡 ‘우체국’은 ‘김양식’이 번역해냈다. ― 유한(有限)과 무한(無限)의 지식을 하나로 결합시킬 줄 아는 자는 유한한 지식의 도움으로 영원에 도달할 수 있다. ―

이 한 구절만으로도 ‘타고르’의 철학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하게 된다. 필자가 찾아간 그의 생가는 ‘캘커타’ 시내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붉은 벽돌로 된 3층 건물로 口(입구)자 형의 거대한 궁전이었다. 그가 살던 집을 ‘타고르예술대학’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 시대 수도이던 ‘캘커타’에서 제일가는 부호였다고 했다.

15자녀 중 14번째인 타고르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드러내어 시, 소설, 미술, 희곡, 철학, 종교 등에 천재적 모습을 보였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학벌이라는 게 없다. 초, 중, 고가 그렇고 런던 유학도 1년을 마치고 중퇴를 했다는 것이다. 학교공부가 시시했던 모양인가….

필자는 ‘타고르’대학 ‘라빈드라 바리티’ 부총장의 안내로 집안을 돌아보면서 그의 그림솜씨에 놀랐다. 가족들의 초상화도 ‘타고르’가 그렸다고 했다. 집안엔 연극무대까지 갖춰 놓고 본인이 희곡을 쓰고 주연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때 머리를 스쳐가는 게 있었다.

‘작가는 아랫배가 나오면 글을 못 쓴다’고 한 ‘토마스만’의 말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가난뱅이 대가도 있지만 평생 잘살며 명작을 남긴 ‘괴테’도 있다. 그렇다면 ‘타고르’도 이 범주에 넣어야 할 인물일 것이다. 당시 ‘타고르’생가는 인도의 르네상스의 요람이었다고 했다.

이집에는 가끔 저 유명한 무저항주의자 ‘간디’가 찾아와 그와 담소를 즐겼다고 한다. 어떻든 그의 생가는 ‘新古典의 바다’라는 인상을 짙게 풍겼다. 그 바다를 조그마한 조각배로 구경하고 뭍으로 상륙하는 기분으로 그곳을 빠져 나왔다. 큰 추억거리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캘커타의 좁은 골목 풍경
▲캘커타의 좁은 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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